경북 칠곡 할머니 50여 명, 직접 손으로 위로 편지 작성
칠곡군, 15일 영어로 번역한 뒤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 전달
"우리도 전쟁 때 억수로(굉장히) 도움 받았는데 마이(많이) 도와주지 못해가(못해서) 미안합니데이."(칠곡할매글꼴 김영분체 주인공 김영분 할머니)
6·25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경북 칠곡군의 전쟁세대 할머니들이 주름진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가 칠곡할매글꼴로 재탄생해 우크라이나로 향한다. 칠곡군은 6·25전쟁을 겪었던 할머니들이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내용의 편지를 모아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 전달한다고 10일 밝혔다.
칠곡군에 따르면 칠곡 할머니 50여 명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의 아픔을 위로하는 등의 내용으로 편지를 적어 칠곡군에 보냈다. 이들은 "아이고 그래 전장났다매(전쟁 났다며), 그 어려운 데서 애들하고 우예사노(어떻게 사나요), 머 무글꺼는 있나(먹을 것은 있나), 보태주마(보태주면) 좋을낀데(좋을텐데) 마음뿐이다" 등의 내용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걱정했다.
또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 할매라서 기력과 돈이 없어 우크라이나를 돕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길 빌고 있습니다" 등 전쟁의 참상에 공감하고 마음밖에 전달할 수 없는 아쉬움도 담담하게 편지에 써내렸다. 박점순(84) 할머니는 "수많은 미군과 외국 군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그들이 보내준 구호 물품이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며 "우리가 도움을 받은 만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칠곡군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전선이 있던 곳으로 고지전을 비롯해 다부동전투 등 수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할머니들이 전쟁의 위험을 공감하면서도 격려할 수 있는 이유다. 양화자(87) 할머니는 "마을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불발탄과 지뢰가 전부였다"라며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대한민국처럼 살아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칠곡군은 오는 15일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고 칠곡할매글꼴로 인쇄한 뒤 책으로 엮어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대사관도 할머니들의 편지가 자국민을 위로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할머니들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것은 물론 이번 기회로 칠곡할매글꼴도 세계로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지난 2020년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 5명이 4달간 A4용지 1만여 장에 한글과 알파벳을 쓰며 연습한 결과 탄생한 글씨체로 MS오피스 등 프로그램에 탑재돼 있고 윤석열 대통령의 연하장에도 쓰였다. 국립 한글박물관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칠곡할매글꼴은 경주 황리단길, 포항 해병대 입대 환영 현수막에도 쓰이는 등 넓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전이수 작가의 그림에 칠곡할매글꼴로 글귀를 덧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