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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와서 해방된 기분” 제주 4ㆍ3에서 살아남은 재일조선인의 기록

입력
2023.05.04 14:50
수정
2023.05.04 15:3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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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파친코

자이니치(在日)는 재일조선인과 그 후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1945년 해방 당시 약 200만 명에 달했는데,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왔고 60만 명은 일본에 남았다. 드라마 ‘파친코’ 이후 여러 차별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세세한 개인의 이야기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는 리쓰메이칸대 준교수를 거친 뒤 헬싱키대 강사로 활동하는 재일교포 3세 사회학자 박사라(39)가 쓴 ‘가족 연대기’다. “나는 왜 이곳에서, 이런 이름으로,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가족들을 인터뷰해 썼다. 제주 4ㆍ3 사건에서 살아남은 재일조선인 가족의 생애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고모부 이연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장이 있는 제주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해방 후 남로당원으로 활동했다. 제주도 좌익들은 투쟁하기 위해 한라산으로 올라갔지만, 이연규는 “절대 이길 리 없다”고 생각해 일본으로 밀항해 터를 잡았다. 그는 일본에 와서 “해방된 기분”을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ㆍ박사라 지음ㆍ김경원 옮김ㆍ원더박스 발행ㆍ314쪽ㆍ1만9,800원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ㆍ박사라 지음ㆍ김경원 옮김ㆍ원더박스 발행ㆍ314쪽ㆍ1만9,800원

4ㆍ3 사건 당시 13세로 제주도에서 지낸 고모 박정희. 일본으로 밀항할 때 붙잡혀 오무라 수용소에서 지냈는데 다다미에 앉아 놀고 밥도 배불리 먹은 경험을 “퍽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큰아버지 박성규. 4ㆍ3 사건 학살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지만 제일 괴로웠던 건 일본에서 식구들이 경제적 문제로 갈등하던 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일본은 투쟁과 전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제2의 고향이다. 동일한 역사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는 메시지가 솔직한 문법으로 전해진다. 자칫 하나의 생각과 감정으로 흐를 수 있는 역사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조각을 제공한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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