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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데 너무 배고파서"...외상 부탁한 미혼모 채용한 분식점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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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데 너무 배고파서"...외상 부탁한 미혼모 채용한 분식점 사장님

입력
2023.05.03 14:00
수정
2023.05.03 14:07
0 0

'먹튀수법' 망설이다, 속는 셈 치고 배달
얼마 후 약속대로 음식값 계좌 이체
"아이 낳겠다" 의지에 도움 주기로
"딸 둘 아빠 입장서 도운 것일 뿐"

미혼모. 해당 기사와는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미혼모. 해당 기사와는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면서 외상 배달을 부탁한 10대 미혼모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제공하기로 했다는 한 분식점주 선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혼모는 얼마 후 약속대로 음식값을 갚았고, 알고 보니 중학생 때부터 해당 분식점을 자주 찾았던 어린 단골손님이었다.


"미혼모인데 알바비 들어오면 드릴게요" 외상 주문 배달 망설이다 받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외상 배달 주문 요청 글. 이 주문을 받았다는 분식점주는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배달해줬다"고 적었다. 온라인커뮤니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외상 배달 주문 요청 글. 이 주문을 받았다는 분식점주는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배달해줬다"고 적었다. 온라인커뮤니티

지난달 3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실이라면 정말 마음 아픈 일인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작성자 A씨는 이 글에 한 배달 응용 소프트웨어(앱)를 통해 받았다는 주문 내역을 공유했다.

야채죽과 참치마요밥 2인분 주문건이었는데, 요청사항에는 "사장님 안녕하세요. 제가 미혼모에 임신 중인데 너무 배가 고픈데 당장 돈이 없어서 염치없지만 부탁드려 봅니다. 만약 주문 된다면 돈은 다음 주말이 되기 전에 이체해 드릴게요.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라며 외상을 요청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A씨는 손님을 믿고 배달해 줬다가 음식값을 받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지만 미혼모라는 단어에 마음이 흔들렸다. 고민에 빠진 A씨가 주문자에게 전화를 걸자 앳된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이 여성은 "원래 먹던 곳이라 부탁드려 봤다. 민폐를 끼쳐 너무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주문 이력을 확인해 보니, 이 여성 말처럼 총 13번의 주문기록이 있었다.

A씨는 통화를 마친 후 곧바로 음식을 보냈다. 여성은 곧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올 테니, 주말까지는 꼭 음식값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여태 이런 종류(무료로 음식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무수히 봐왔고 절대 응하지 않아왔지만, 이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보냈다"고 적었다. 해당 글에는 "단골 먹튀 수법"이라는 다른 자영업자들의 우려 섞인 반응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중학생 때부터 단골이었던 손님…아르바이트 자리 제공하기로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분식점주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미혼모라며 외상 배달을 요청했던 손님에게 약속대로 음식값을 받았다면서, 이 손님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분식점주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미혼모라며 외상 배달을 요청했던 손님에게 약속대로 음식값을 받았다면서, 이 손님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해당 미혼모의 사연은 얼마 후 사실로 밝혀졌다. A씨는 2일 동일한 커뮤니티에 '미혼모 손님에게 음식 보내드린 후기'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결과적으로 음식값을 계좌로 입금받았다"면서 "음식값을 받고 나니, 제가 선택한 것에 신뢰로 보답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아내와 상의 후 미혼모 손님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 없다고 사양하던 손님은 "우리도 딸 둘을 낳고 키워서 얼마나 힘든 상황일지 잘 안다"는 말에 마음을 열었다. A씨 부부가 찾아가 보니, 한 원룸에 B(19)양이 혼자 살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당시 배달보냈던 음식 2인분이 3개 통에 나눠 남겨있었다. "양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나눠뒀나"라고 묻자, B양은 "아르바이트비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그때까지 배고플 때 조금씩 먹으려고 나눠 놓았다"고 말하곤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B양 얼굴이 낯이 익었다. A씨는 몇 년 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하교시간대 친구들과 함께 분식점을 찾던 한 중학생을 떠올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학생이었다.

그간의 사정을 물으니, B양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살았지만,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 혼자 공부하며 살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부모님에게는 개월수가 다 차 어떻게 손쓰지 못할 정도가 됐을때 임신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B양은 "집 앞 편의점과 카페 사장님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내가 배고픈 건 아기도 배고픈 것이라는 생각에 A씨 가게에 배달 주문을 하면서는 사정을 솔직히 적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A씨 부부는 B양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B양이 정부로부터 임신·출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카드를 만들고, 갈 만한 산부인과를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왔다. A씨는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B양에게 어른이랍시고 이러쿵저러쿵 지적질을 하기보다는 우선은 그저 지켜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딸 둘 아빠 입장에서 한 일, 큰 선행 아니라고 생각"

A씨는 글 말미에 "사실 속는 셈 치고 음식을 보냈던 만큼, 음식값을 돌려받고선 '진짜 미혼모가 맞았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미혼모가 됐다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거짓 주문이었던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보성 목적으로 올린 글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 가게 이름을 밝힐 일은 없다"면서 "초등학생 딸 둘이 있는 애 아빠 입장에서 한 일이었을 뿐, 그렇게 큰 선행을 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A씨 글에는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외상은 쉽지 않은데 감동받았다", "베풂이 언젠가 돌고 돌아 올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은 속아주는 셈 치고 돕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사장님 혼자선 힘들 테니 물티슈 등이라도 보내 함께 돕겠다", "출산 용품을 나눠주고 싶다" 등 B양을 지원하고 싶다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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