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타점이 홈런으로 나와 그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 이름 기억해 달라’고. 그 나이에 첫 홈런을 친 선수가 무슨 ‘깡’으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흥분해서 그냥 생각 없이 말했던 것 같다(웃음).”
프로야구 통산 타점왕을 눈앞에 둔 KIA의 해결사 최형우(40)가 15년 전 개인 첫 타점 순간을 떠올리면서 꺼낸 말이다. 최형우는 중고 신인 시절이던 2008년 4월 1일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잠실 LG전에서 연장 10회 결승 2점포로 프로 데뷔 6년 만에 타점을 신고했다. 당시 짜릿한 결승 홈런을 치고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이제는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전설급 타자가 됐다.
이미 2일 현재 통산 2루타 469개로 ‘국민 타자’ 이승엽(464개) 두산 감독을 넘어 부문 1위에 오른 최형우는 이제 통산 타점 1위까지 가시권에 들어왔다. 통산 1,475타점으로 부문 1위 이승엽 감독의 1,498타점과 격차를 23개로 줄였다.
사상 첫 1,500타점까지 바라보고 있는 최형우는 최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타점 기록은 정말 의미가 크다”며 “1,500타점은 내 야구 인생에 큰 영광이고 축복이다. 달성하면 큰 턱을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아프고 꾸준히 경기에만 나간다면 언젠가 깰 수 있는 기록이라 크게 의식하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4월 23일 광주 삼성전에서 달성한 통산 2루타 신기록도 의미가 남다르다. 최형우는 “중장거리 타자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다녔기 때문에 2루타 기록을 새로 썼을 때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며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형우의 기록 잔치는 숱한 시련을 이겨내고 이뤄낸 결과물이라 더욱 값지다. 2002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최형우는 2004년까지 1군에서 6경기(7타수 2안타)만 뛰고 2005시즌을 마친 뒤 방출됐다. 오갈 데가 없었던 그는 새로 야구단을 창단한 경찰청에 입대해 실력을 갈고닦아 2008년 삼성에 재입단했다.
이후 여정도 쉽지 않았다. 2008시즌 첫 타점을 올리기 전까지 득점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이전 같았으면 위축될 법도 했으나 성격도 뒤바뀌었다. 최형우는 “만루 기회를 놓쳤을 때 자책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안 되면 2군에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며 “경찰청에 있는 동안 소심한 부분이 사라졌다”고 돌아봤다.
후배들에게도 어떤 실패가 오더라도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테니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가 철저히 돼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형우는 “선수들에게 전환점은 자기도 모르게 찾아온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 시점에 기회가 오고, 이를 잡으면 인생이 바뀌게 된다”면서 “나 같은 경우는 군대가 전환점이 됐다. 경찰청에서 준비를 잘한 덕분에 야구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2008시즌에 잠재력을 폭발시킨 최형우는 그해 신인왕에 오르고, 2016시즌 후엔 사상 첫 자유계약선수(FA) 몸값 1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불혹이 된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4번 자리를 지키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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