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추계서 의무화에도 12.5%만 제출
폭넓은 예외조항으로 필요한 경우 제외
업무 9배 증가에도 인력 2배 증원 그쳐
지난 한 달간 재정수요가 있는 법안 중 '비용추계서'를 함께 제출한 법안은 12.5%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재정수요 법안을 발의할 경우 비용추계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유명무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국가 재정건전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법안 시행에 소요되는 비용부터 꼼꼼히 살필 수 있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안과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3월 16일~4월 15일) 비용추계서 제출 의무를 갖는 법안 526건 중 비용추계서와 함께 제출된 경우는 66건(12.5%)에 불과했다. 이 중 비용 추계를 맡겼다는 일종의 의뢰서 성격인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한 경우는 460건(87.5%)에 달했다.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예산이 얼마나 들지 분석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법안부터 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법안과 함께 비용추계를 제출하지 않는 배경으로는 관련법의 폭넓은 예외조항과 비용추계에 부족한 인력이 꼽힌다. 국회법상 △예산 규모가 작거나(연평균 10억 원 미만 또는 한시적 경비 30억 원 미만) △국가안보나 군사기밀 관련 법안 △기술적 추계가 어려운 경우에는 비용추계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로 인해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1호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의 경우도 '쌀은 기상 여건에 크게 영향을 받고, 소비성향 등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워 기술적 추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비용추계서가 제출되지 않았다. 재정 부담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이 컸던 만큼 비용추계가 필요했지만, 예외를 적용받은 것이다. 해당 법안을 담당한 분석관은 "무리한 전제를 세워서 추계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 8.8배 증가한 동안 증원 2배도 못 미쳐
늘어난 업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 문제도 크다. 2015년 국회법 개정에 따른 비용추계서 첨부 의무화 제도 시행으로 추계 업무를 담당하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업무가 큰 폭으로 늘었다. 예정처가 발간한 '2022 법안 비용추계 이해와 사례'에 따르면, 2014년 557건에서 2021년 4,910건으로 약 8.8배 증가했다. 반면 예정처 관련 인력은 2014년 15명에서 2021년 28명으로 늘었을 뿐이다. 1년간 분석관 한 명이 담당한 법안이 2014년 약 37건에서 7년 만에 175건으로 폭증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19년 기준 의회예산처 인력이 약 300명 규모에 달한다. 류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유사한 업무를 맡은 미국 의회예산처와 비교했을 때 인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비용추계서가 재정 건전성 강화에 기여하기 위해선 제도 정비와 함께 법안심사 과정의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류 교수는 "당장 변화가 어렵다면 간접적으로 예산을 압박하는 방식을 도입해 볼 만하다"며 상임위원회별 예산 규모를 공개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류 교수는 "어떤 법안이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공개하는 시스템이라도 있으면 국민이나 언론이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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