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 그린 신간 '내일은 또 다른 날'
붓으로 살려낸 깊은 감정…2년 꼬박 걸려
그래픽노블 입지 좁은 국내 현실에 아쉬움
"국내에는 만화(그래픽노블)가 문학작품이 아니라고 보거나 그보다 낮게 보는 풍토가 여전히 있어서 안타까워요. 내 나라 독자들에게 더 관심 받고 싶죠. 내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은 것처럼."
그래픽노블 작가 김금숙(52)이 신간으로 돌아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담은 '풀'로 만화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2020)을 한국인 최초로 받는 등 해외 유수의 상들을 휩쓴 그가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새 책에 대한 솔직한 기대를 털어놓았다.
"국내 독자들과 더 소통하는 것"이 그 기대. 소박한 듯하지만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작가에게 중요한 과제다. 국내에서 그래픽노블 장르의 좁은 입지를 넓히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런 마음으로 내놓은 신작 '내일은 또 다른 날'은 서른넷의 만화가 '바다'와 또래의 남편 '산이'가 시험관 시술을 결심하고 네 번의 시도 끝에 포기하는 과정을 담았다.
김 작가는 이 작품에 2년을 꼬박 쏟았다. 평소 작업 기간에 배는 되는 기간이다. 인물들의 감정을 담백하면서도 깊이감 있게 표현하고 싶어 고치고 또 고친 까닭이다. "우울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쓰고 싶지 않았어요. 결말까지도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르게 어두웠던 전작들과 다르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제목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작가는 난임 문제를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신경 썼다. 그래서 산이의 이야기를 별도 장(8장)으로 구성했다. 난임 치료를 받는 남성의 내면도 잘 담아내고 싶어서다.
김 작가는 세종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조형예술 박사과정까지 밟은 미술학도였다. 생계를 위해 번역 일을 하며 만화를 접했다. '아버지의 노래'(2012)가 프랑스에 출판되면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이산가족, 제주 4·3 등 굵직한 근현대사를 주로 다뤘다. 그랬던 작가가 난임이란 소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성의 몸에 변화가 시작되는 50대가 되면서 자연스레 10여 년 전 묻어뒀던 소재를 꺼내들었다"고 설명했다. "저출산과 노령화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는 분위기라 시기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변함없는 점은 여성의 서사가 중심이라는 것. 난임 역시 여성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더 압박을 받고, 치료 과정에서 몸도 더 힘든데 솔직히 상황을 말하기도 어렵잖아요." 붓으로 화선지에 직접 그린 그림의 매력도 여전하다. 작가는 "흑과 백 사이 무수한 회색 톤이 아름답다"며 "그 안에 감정의 미묘함을 담는 작업 방식이 좋다"고 설명했다. 나무와 산, 새, 하늘 등 자연을 그린 컷은 한 장의 수묵화와 같다. 그 안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잘 묻어난다.
김 작가는 '그리운 작가'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래픽노블 한 칸 한 칸의 그림이 각각 의미를 내포한 한 장의 그림과 같다"고 한 그의 말로 미뤄보면 언제든 몇 번이고 곱씹어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의미로 짐작된다. 차기작은 다시 역사 이야기로 돌아가는 걸까. "취재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 내용으로 작업을 막 시작했어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소재는 아직 비밀입니다.(웃음)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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