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삼성의 '푸른 피'가 흐를 것 같았던 이승엽(47) 두산 감독이 25일 다른 유니폼을 입고 친정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 은퇴 후 해설위원,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대사, 야구 예능프로그램 '최강 야구' 촬영 등으로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삼성의 상대 팀 유니폼을 입고 적장으로 온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날 예정된 이 감독의 첫 대구 원정경기는 비로 취소됐다.
대구 팬들과 만남이 하루 미뤄졌음에도 이 감독은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익숙했던 3루 홈 더그아웃이 아닌 1루 원정 더그아웃 앞에선 그는 "아직 별 느낌이 없다"며 “처음 두산에 올 때는 다른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완전 두산의 일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오면서도 ‘내가 여기서 뛰었었지’, ‘내 고향이지’라는 생각은 없었다”며 “냉정해져야 하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역 시절 '국민 타자'로 불린 이 감독은 대구의 상징이기도 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야구도 대구중앙초-경성중-경북고를 거쳐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고졸 신인으로 이 감독은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시즌(2004~11)을 제외하고 15시즌 동안 줄곧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통산 역대 최다인 467홈런을 쳤다. 2003년에는 당시 아시아 최다 신기록인 56홈런을 쳐 '잠자리채'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는 5개를 꼈고, 최우수선수(MVP)도 5차례 영예를 안았다. 골든글러브는 10차례 수상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뛸 때도 그는 늘 삼성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2017년 은퇴식 때는 등 번호 '36'을 영구결번으로 남겼고, 라이온즈파크 오른쪽 외야 관중석 위에 '이승엽 벽화'가 새겨졌다. 영원한 '삼성맨'으로 남을 줄 알았던 이 감독은 하지만 지난해 말 두산의 새 사령탑에 선임됐다.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깜짝 컴백이다.
이 감독은 “사실 선수 때 뛰면서 받은 사랑과 애정은 잊을 수 없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좋은 시절을 삼성에서 보냈는데 한도 끝도 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지도자를 시작했고,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삼성에 대한 애정을 보일 수 있겠나. 공사는 구분해야 하고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두산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방식으로 대구 팬들에게 인사를 할지도 생각을 못 했다. 이 감독은 “인사를 할 타이밍이 오지 않을 것 같다”며 “우리가 승리한다면 그라운드에 나가야 하니까, 이기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과 함께 ‘국민 유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진만 삼성 감독도 동갑내기 사령탑 대결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박 감독은 “나와 이 감독의 대결이 흥행 카드가 되고, 가라앉은 야구 분위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팬들의 관심이 크다는 건 알고 있다. 그만큼 좋은 경기로 우리가 보답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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