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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탈북 난민 눈감은 유엔난민기구

입력
2023.04.26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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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편 가치 수호 위해 만들어진 UNHCR
중국 눈치 보며 탈북 난민에 접근조차 못해
탈북민 안전이동 통로 등 제 역할 모색해야

난민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난민기구가 중국 내 탈북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 탈북자 가족이 2002년 5월 중국 선양 일본 총영사관 영내로 진입하다가 중국 공안의 제지를 받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난민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난민기구가 중국 내 탈북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 탈북자 가족이 2002년 5월 중국 선양 일본 총영사관 영내로 진입하다가 중국 공안의 제지를 받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인류 재앙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설립했다. 이 국가 간 연합체는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인류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지구촌에서 가장 성공적인 다국적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마누엘 칸트와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던 '세계정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유엔은 난민보호라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1950년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를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하게 된다. 2차 대전 때 발생한 유럽발 난민을 비롯해 전 세계 난민의 안전한 귀환 또는 망명국으로의 정착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와 역할이 인정되어 UNHCR은 1954년과 1981년 두 차례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오늘날로 돌아와서, 그 위엄 있던 기구가 언제부터인지 중국 눈치나 보는 기회주의적인 기구로 전락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 단편적인 예가 중국 내 탈북민을 대하는 UNHCR의 입장이다.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이들에 대해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 관련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난민의 절대다수가 인신매매에 취약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종종 가사노동, 대리모, 매춘에 종사하게 된다. 최근 국제인권연맹(FIDH)과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탈북 여성들은 법적 신분이 없어 인신매매와 강제 결혼에 특히 취약하지만 강제 송환이 두려워 신고나 보호를 요청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51 난민협약'과 '1967 프로토콜' 규정을 보면 중국 내 탈북민은 보호받아야 할 합법적인 난민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강제 북송되는 순간 그들은 북한 형법 제47조에 의해 조국을 배신한 혐의로 구금, 징역, 고문, 사형 등의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에 대해 '반인도 범죄' 방조행위로 결론을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UNHCR은 왜 이 상황에 대해 방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1995년 중국과 체결한 특별협정에 의하면 UNHCR은 탈북민의 난민 지위를 결정하고 다양한 지원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양자 간 분쟁 발생 시 45일 이내 '구속력 있는 중재'를 요청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UNHCR은 탈북자 접근을 거부당하면서도 중재 요청 권리를 챙기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 한마디에 난민 대상자들에게는 접근조차 못하는 난민기구의 중국 내 존재 이유가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UNHCR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탈북민들이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공식 통로'를 개설하는 방안이 있겠다. 그 외에도 중국 당국을 설득해 중국에 '불법체류' 중인 탈북자들을 가끔씩 사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탈북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유엔난민캠프 건립일 것이다. 예를 들어 탈북자 전용 '임시수용시설'이 몽골에 세워진다면 중국 당국도 큰 골칫거리를 해소할 기회일 수 있다.

'돼지 한 마리 값'에도 팔려나간다는 중국 내 탈북 난민들은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으며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UNHCR은 더 이상 이 심각한 사태를 방치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하고 주어진 책임을 다해 최소한의 체면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통일부 북한인권증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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