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도시가스 점검원 A씨는 새로 맡은 구역을 점검하던 중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한 집의 경우 서류상 분명히 6개월마다 가스 점검이 완료된 것으로 돼 있는데, 정작 그 집주인은 5년 전 요양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한 번도 가스 점검원을 만난 적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점검원이 바뀐 거냐"면서 "전에 오던 점검원은 '검침 완료한 걸로 해놓을 테니 자가검침하면 된다'고 했었다"며 A씨를 몰아내기 바빴다. 명백한 허위·부실 점검이었다. A씨는 회사에 이를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97~98%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점검률' 숫자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요즘 외부인이 집에 들어오는 걸 꺼리는 사람도 많고, 일하느라 집을 하루 종일 비우는 경우도 많아 97%의 실점검률은 말이 안 되는 숫자"라며 "그런데도 그 숫자를 달성하도록 점검원들을 몰아붙이면서 오히려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가정이라면 6개월에 한 번씩 받도록 돼 있는 정기점검이 그간 부실하게 이뤄져 왔다는 고발이 나왔다. 부실점검의 원인으로 고질적인 원·하청 이중구조와 실적 경쟁이 지목됐다.
김정희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장은 24일 "최근 점검원 구역 재배치 과정에서 이전에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꼼수 점검' 행태가 드러났다"며 "센터별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97~98%의 실점검률을 유지하라고 점검원들을 압박해 허위 보고가 판을 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실점검 관행은 시민 설문조사에서도 일부 드러났다. 공공운수노조 울산본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8일까지 울산 시민 6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3명의 시민이 "'점검한 것으로 해놓겠다'는 점검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49명은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안전 점검원의 연락이 없었다'는 응답은 23명, '안전점검원이 자가점검을 하라고 했다'는 응답도 11명 나왔다. 도시가스 안전관리 규정은 3회 실제 방문해도 고객이 없거나 점검을 거부할 때만 자율점검을 허용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점검원 1인당 할당되는 1,200가구 중 98%를 완료한다는 건 1,176가구에 들어가서 직접 점검을 했다는 뜻인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런데 회사에선 점검률이 92~93%만 돼도 저성과자로 낙인찍고 불러서 무안을 주거나 기본급을 차별 지급하는 식으로 허위보고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센터에서 성과를 요구하는 동안 정작 가스 점검의 목적인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의 또 다른 점검원 B씨는 "보일러실도 가스와 연결돼 있으면 점검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더니, 고객이 '10년 동안 보일러실에 점검원이 들어간 적 없다'고 했다"면서 "오히려 내가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시가스가 누출될 경우 중독·질식 사고뿐 아니라 화재·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정기 점검은 매우 중요하다. 노조 관계자는 "2인 1조로 점검하는 팀의 경우 실점검률이 70%인데도 한 달에 20~30건씩 가스누출을 잡아내는데, 실점검률 98%인 사람들은 오히려 가스누출 사례가 없다고 한다"면서 "이러다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비단 이 문제가 울산에서만 일어나고 있을 리 없다"면서 "실적 압박으로 부실 점검을 부추길 게 아니라, 실제로 안전 점검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도시가스업체와 지자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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