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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민주당 돈 봉투 의혹'… 한국 정당사 뒤흔든 불법 정치자금 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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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민주당 돈 봉투 의혹'… 한국 정당사 뒤흔든 불법 정치자금 사건은

입력
2023.04.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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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기소된 박희태 사건
2002년엔 '차떼기'로 불법 대선자금 받기도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후보 측으로부터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취 파일에서 돈 봉투가 오간 정황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당시 0.59%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당선된 송영길 전 대표는 22일 체류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 외부의 질타뿐 아니라 해명을 위해 조속한 귀국을 촉구하며 성토하는 목소리부터 송 전 대표를 탈당시켜야 한다는 의견까지 당 내부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보수 정당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정체성으로 여겨 왔던 민주당을 뒤흔들면서 당 내부의 당혹감도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송갑석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녹취록을 둘러싼 의혹으로 인해 당의 도덕성과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그간의 정당 혁신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나라→새누리' 당 간판 바꾼 돈 봉투 살포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으로 정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희태(왼쪽에서 두 번째) 전 국회의장이 2012년 6월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 기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으로 정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희태(왼쪽에서 두 번째) 전 국회의장이 2012년 6월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 기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송 의원뿐 아니라 민주당 원로 등 야권 인사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 박희태 의장 사건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고승덕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됐다. 고 변호사는 2011년 12월 한 언론사 칼럼을 통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 측으로부터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쓴 뒤 이듬해 1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고 변호사 폭로 이후 한나라당 의뢰를 받은 검찰은 “잘못된 정치문화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며 정계에서 은밀히 행해지던 돈 봉투 살포 관행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효재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돈 봉투 살포에 개입했고,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확보돼 박 의장은 사퇴했고, 김효재 수석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47일간 수사를 벌인 검찰은 박 의장과 박 의장 캠프 상황실장을 맡았던 김 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당대표에 당선되기 위해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살포한 혐의(정당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국회의장이 재판에 넘겨진 건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다만, 박 의장 측이 의원 1명에게만 돈 봉투를 건넸을 리 없지만 돈 봉투가 다른 의원들에게 살포된 흔적은 찾아내지 못했고, 당시 박 의장 측이 급하게 마련했던 것으로 파악된 1억9,000만 원의 사용처도 밝히지 못해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박 전 의장과 고 변호사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고 했던 김 전 수석은 2012년 말 2심에서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의 범행은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것으로 피고인들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 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 사건은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낀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 상징 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는다.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대명사 '차떼기' 사건

16대 대선 기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 LG그룹이 불법정치자금을 '차떼기'로 전달했다는 소식을 전한 2003년 12월 10일 자 한국일보 지면.

16대 대선 기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 LG그룹이 불법정치자금을 '차떼기'로 전달했다는 소식을 전한 2003년 12월 10일 자 한국일보 지면.

박 전 의장의 돈 봉투 살포 사건이 이번 민주당 전대 돈 봉투 의혹 사건과 유사하여 정치권에서 언급되긴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대명사는 2002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이다. 한동안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이 사건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까닭은 ‘차떼기’ 수법 때문이었다. 여러 은행의 가명·차명·무기명 계좌 등을 자유롭게 활용해 이뤄지던 기존의 정치자금 모금이 김영삼 대통령 정부 시절 도입된 금융실명제로 힘들어지자, 일명 ‘차떼기’라는 획기적인 방식이 등장했다.

LG 측이 한나라당에 ‘검은돈’을 건넨 ‘차떼기’ 수법은 대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공식 후원금 30억 원을 내고도 한나라당의 추가 자금지원 요청을 받은 LG 측은 당시 한나라당 법률고문 서정우 변호사에게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휴게소 주차장에 탑차를 건넸다. 일반인이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지만 대형 화물차가 자주 오갔기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았던 이 2.5톤짜리 탑차에는 무려 현금 150억 원이 가득 담겨 있었다.

150억 원은 2억4,000만 원이 담긴 상자 62개와 1억2,000만 원이 담긴 상자 1개 등 상자 63개에 나뉘어 화물칸에 실려 있었다. 탑차와 화물칸 열쇠를 건네받은 서 변호사는 탑차를 몰고 가 지정된 장소에 돈을 내려놓고 미리 정한 접선 장소에서 차를 되돌려 줬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금이 아닌 국민주택채권 형태로 전달한 삼성 측 수법도 새로웠다. 삼성 측은 두 차례에 걸쳐 55억 원과 57억 원을 서 변호사에게 전했는데, 1,000만 원권과 500만 원권 두 종류의 국민주택채권을 두 줄로 쌓아 봉투에 담아 두툼한 월간지 한 권으로 보였다고 한다. 삼성 측 관계자가 대낮에 서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가 봉투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얼핏 보면 한 권의 책을 건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용차 트렁크에 1억 원씩 담긴 쇼핑백 20개를 마련했다가 지하주차장에서 다른 차에 옮겨 실었던 SK 측 수법은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처럼 기발한 수법을 파헤친 검찰 수사로 한나라당 측은 832억 원대, 노무현 당시 후보 측은 약 12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로 전환해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세우는 등 오랜 기간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정도로 후폭풍이 거셌다.


선거 박빙일수록 금권 선거 욕망 커져

정치권에서는 이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끊이지 않는 건 선거가 박빙일수록 돈을 써서 표를 사서 승리하려는 검은 욕망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선거와 돈의 관계는, 그 유혹은 없어질 수가 없는 거다”라면서 “정도의 문제인데 돈을 쓰고 싶은 유혹은 선거 때 항상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가 치열하면 좀 더 혼탁해지고, 원사이드하면 덜 혼탁한 정도지 전당대회를 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오랜 관행이었다는 말이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행 정치자금법상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현행 법령을 개정하지 못하는 건 과거 수많은 불법이 드러나 지탄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런 사건이 불거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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