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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소년의 옥중서신, "아빠 무지무지 사랑해요."

입력
2023.04.19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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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주)NEW 제공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주)NEW 제공


판사 가슴 울리는 수용자 자녀의 탄원서
편견 속에 방치된 수용자 가정 인권상황
범죄예방 위해 사회적 관심도 높아져야

법원 견학을 온 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월급이 얼마예요?" 왜 그렇게 판사의 수입이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본봉과 수당이 얼마라고 말하기 민망해 대충 얼버무린다. 소정의 직무성과금도 있는데, 형사부 판사들에게 조금 더 얹어준다. 형사재판부만을 위한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도 있다.

왜 유독 형사부를 챙기는 걸까. 잔혹한 범죄와 피해자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형사재판이 주는 심리적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사건·사고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간접 경험으로 마치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비탄에 빠지고 불안을 겪는 증상을 '대리외상증후군'이라 한다. 이런 증상을 겪는 판사가 적지 않다. 특히 부양가족 있는 피고인을 구금하는 상황은 무척 힘들다. 물론 무책임하게 죄를 저지른 피고인 본인 잘못이지만, 어린 자녀가 보내오는 탄원서는 판사를 심란하게 만든다.

보이스피싱 상담원으로 구속된 피고인과 단둘이 살던 고3 여학생이 내게 보낸 편지다. "엄마가 몇 달째 오지 않으니 걱정되고 공부도 안 됩니다. 집 공기가 쓸쓸해요. 너무 힘들어요. 판사님, 엄마는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그런 거 절대 아니에요. 다 저 때문이에요. 기죽을까 봐 학비 지원도 신청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제 학비랑 급식비 지원신청도 다 할게요. 제발 엄마를 돌려보내 주세요. 엄마가 없으면 살 이유가 없어요."

구속되어 형사부로 온 한 아이가 마약으로 구속된 아버지에게 보낸 옥중서신도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아이의 편지를 동봉한 탄원서를 보냈다. "아빠, 구형 재판받고 왔는데 단기 10월에 장기 1년 6월 받았어요. 삼촌들께 물어보니 집행유예 아니면 소년부 둘 중 하나래요. 너무 죄송해요. 철없이 방황하다 이곳까지 왔네요. 아빠도 힘들죠? 제발 우리 하루빨리 나가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아요. 못난 아들이 아빠 무지무지 사랑해요. 영원히."

그래픽=신동준기자

그래픽=신동준기자

온갖 사연을 마주하는 판사에게도 수용자 자녀 문제는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다. 피해자조차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가해자 자녀까지 챙기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시선도 있지만, 부모가 죄를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것은 부당하다. 수용자 자녀에 대한 편견 때문에 변변한 조사조차 없다가 2017년에 이르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용자 자녀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수용자의 25.4%가 19세 미만 자녀가 있는데, 연간으로 치면 5만4000여 명에 이른다. 그중 60%는 초등학생 이하이고, 보호자 없이 아동만 남은 경우도 2.4%나 된다. 수용자 가정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11.7%(일반 2.3%)이고, 이혼율은 일반가정보다 5.5배, 수용자 자녀가 수용자가 될 확률은 또래 집단보다 6배 더 높으며, 남아의 경우는 65%가 10세 이전에 비행을 저지른다.

어려운 여건에도 수용자 자녀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을 지원한 수용자의 재복역률은 5.7%(일반 25%)였다.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이 범죄를 줄이는 것이다."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대표의 말이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말과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의 사회적 지위와 이름은 잊힐 것이며, 우리가 가진 재물은 이윽고 흩어지겠지만, 어린 영혼들의 가슴에 남긴 여러분의 사랑은 지워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사랑이 그들의 삶 가운데 새롭게 역사할 때, 마침내 세상은 그들의 사랑으로 풍요로울 것입니다.(고종주 전 부산가정지원장의 소년분류심사원 인사말 중)"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모든 분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간절한 바람에도 엄마·아빠를 집으로 보내주지 못하는 판사로서는, 이렇게나마 사회적 관심을 촉구할 뿐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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