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맥베스' 주역 바리톤 양준모 인터뷰
바리톤 이승왕과 27~30일 번갈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심취해 '맥베스'를 시작으로 '오셀로'와 '팔스타프' 등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기초한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중 '맥베스'는 성악적 기량은 물론 고도의 연기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베르디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음악으로 표현한 '맥베스'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바리톤을 오페라 전면에 배치한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바리톤은 고음과 저음을 모두 내며 극적인 연기와 감정을 표현해야 해 '베르디 바리톤'이라는 표현이 정착됐다.
국립오페라단이 27~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오페라 '맥베스'는 '베르디 바리톤'의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바리톤 양준모(49)의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는 바리톤 이승왕(41)과 맥베스를 번갈아 맡는다.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작센주 국립오페라극장) 주역 가수로 활동하면서 2018년부터 연세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양준모는 이번이 맥베스를 맡은 네 번째 프로덕션. 그는 2006년 독일 뮌헨 ARD 국제 콩쿠르 1위와 청중상을 받고, 2007년 '세비야의 이발사'로 오스트리아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던 2011년과 2015년에 독일 무대에서 맥베스를 연기했다. 2016년에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에 맞춰 서울시오페라단이 제작한 '맥베드'에 출연했다.
'맥베스'는 왕이 될 거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권력욕에 휩싸여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의 이야기다. 그의 부인인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의 욕망을 끝없이 부추긴다. 대본 작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와 안드레아 마페이의 도움으로 오페라로 거듭난 베르디의 '맥베스'는 성악가의 음악적 기교와 연기력, 많은 장면 전환이 요구되고 오페라 소재로는 드물게 러브스토리가 없어 쉽게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작품.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맥베스'는 2007년 초연 이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프로덕션이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양준모는 "강한 남자가 아닌 겁이 많은 남자로 맥베스를 그릴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수십 차례 맥베스를 연기하면서 배운 것들을 이번 무대에 녹여낼 것"이라며 "맥베스가 두려움 때문에 무속에 휘말리고 상대를 먼저 죽이는 모습이 잘 표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준모는 오페라 가수로서 "'소리쟁이'가 아닌 언어의 전달자가 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언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리는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는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정작 내가 악보를 소홀히 봐 왔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포르테(세게)'라고 쓰인 부분이 많이 없는데 '맥베스'는 무겁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지르는 소리를 내 왔던 것 같다"며 "소리가 아닌 언어를 전달해야 한다는 성찰의 기회를 다시 한번 갖게 됐다"고 말했다. "큰소리치지 않고 속삭여도 맥베스의 공포와 조바심이 객석에 전달되도록 예전보다 정리된 맥베스를 보여줄 것"이라고 그가 다짐한 계기다.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성악을 시작한 양준모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독일 유학 시절 "무대에서 연기하려 들지 말고 네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연기 선생님의 조언을 늘 새기고 있다고 한다. 바리톤이다 보니 사랑을 쟁취하는 주인공 대신 사랑을 가로막는 역할이나 악역 또는 노역을 주로 맡아 왔지만 그는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맡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다만 바그너와 베르디 같은 무겁고 진지한 작품뿐 아니라 모차르트, 로시니의 오페라 부파(희극적 오페라)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이 많은 그는 "아직 전성기가 오직 않았다"고 강조했다. 바리톤은 나이 든 아버지 같은 무게감 있고 중후한 역할이 많아 연륜을 음악에 녹여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이탈리아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이 노래하면 그의 삶과 음악 인생이 보여 감동이 크죠. 저 역시 예전과 달리 요즘은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연기할 때 딸 질다의 죽음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납니다. 무대 위의 이야기와 성악가의 인생이 매치될 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죠. 그러니 바리톤의 전성기는 쉰 이후부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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