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카이스트 전 부총장
책 '교육이 없는 나라' 출판
대학 서열화, 대입 위주 교육 비판
“첨단을 쫓지 마세요. 저도 지난 30여년간 마이크로, 나노, 바이오 등 소위 그 시대 첨단 분야를 쫓아 연구했습니다. 막상 뛰어들면 그 분야에서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연구해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첨단을 쫓아갈 때 제가 최고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승섭(61)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최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교육이 없는 나라’(세종서적 발행) 출간기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첨단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나중에 첨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시기는 30대 중반 혹은 40대 초반”이라며 “20년 후의 미래를 예상해 전망이 좋은 학과를 결정하는 것은 부질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KAIST 학생처장, 입학처장, 부총장을 지냈다.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입장에서 교육과 입시제도를 경험하며 느낀 고민”을 책에 담았다.
그가 보기에 한국에 ‘교육’은 없고 ‘대학 입시’만 있다. 어린 나이에 과도하게 공부에 내몰린 학생은 배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어려운 문제는 잘 풀지만 기본 개념 이해는 떨어진다. 정작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대학에서는 전공에 흥미를 잃고 학문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이 떨어져 낙오한다. 이 뿐인가. 어려운 입시 때문에 학생들은 사교육에 내몰리며, 부모들은 막대한 돈을 쏟아 붇는다. “학생은 불행하고 부모들은 억울한”게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해법은 대학 서열화를 깨는 것이다. 서울대부터 아래로 줄 서 있는 대학들을 ‘연구 중심 대학’ ‘교육 중심 대학’ ‘혼합형 대학’ 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서울대 학부를 축소하고 대학원을 강화해 교육 중심 대학'로 만드는 게 교육 개혁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입시에서 ‘무조건 1순위였’던 서울대가 더 이상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교수들은 학부 강의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 대학원들과의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돼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최고 대학,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보기에 이미 학벌 사회에는 균열이 가고 있다. KAIST 교수 임용 역시 명문대 출신이 아닌 다양한 대학 출신으로 문호가 개방됐다. 학벌이 아니라 ‘실력’을 중시하면서다.
교육이 시류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정부의 인력 양성 계획 중에 반도체학과 신설과 정원 확대도 포함돼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했다. 신설 학과를 만들어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걸리는 최소 시간 4~6년 동안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학부모를 향해서도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였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못 해도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어느 대학에 가도 대학 가서 잘 하면 얼마든 만회할 수 있게 됩니다. 대학에서 열심히 하면 서울대나 KAIST 대학원에 생각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학교가 그렇다면 기업은 기회의 문이 더 넓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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