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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가지 경제형벌

입력
2023.04.17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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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이 2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업투자·민생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혁신과 관련한 사전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방극봉 법제처 법제정책국장, 구승모 법무부 법무심의관, 방기선 기재부 1차관, 김범석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오승철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 이수호 해양수산부 항만국장. 연합뉴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이 2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업투자·민생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혁신과 관련한 사전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방극봉 법제처 법제정책국장, 구승모 법무부 법무심의관, 방기선 기재부 1차관, 김범석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오승철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 이수호 해양수산부 항만국장. 연합뉴스

지난달 기획재정부와 법무부가 공동 주관하는 '경제형벌 개선 태스크포스'가 경제형벌 규정 2차 개선안을 발표했다.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과도한 형벌규정 108개를 행정제재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작년 8월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외국인 투자유치에 악영향을 끼치는 32개의 형벌규정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것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결실을 보일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형벌규정이 40%나 증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6개 경제부처 소관 법률의 형벌규정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301개 경제법률의 6,568개 위반행위에 대해 형벌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법률당 평균 22개의 형벌규정이 있는 셈이다. 경제활동과 관련된 법 위반 억지를 위해 과연 형벌이 최선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형벌에 너무 쉽게 의존하는 행정편의주의 발상과 법 위반 억지에 형벌이 최고라 믿는 형벌만능주의 사고 때문은 아닐까.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문제다.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경제 관련 법 위반으로 기업이나 총수 또는 임직원이 고발되거나 기소되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그중에는 형벌로 처벌받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더러 있다. '경제형벌 개선 태스크포스'가 내놓은 1·2차 개선 과제의 대부분은 형벌 적용이 적절치 않거나 형량이 과하기 때문이다. 형벌 적용이 적절치 않은 경우 해당 규정을 삭제하거나 과태료·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우선 전환하고 보충적으로 형벌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전에 법 위반 해당 여부를 알 수 있었음에도 고의적으로 위반하거나 사전에는 몰랐더라도 사후에 이를 알고도 용인하는 경우에만 형벌로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과 같은 경제법은 행위 당시에는 법 위반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공정거래법 규정은 내용이 불명확하고 추상적이어서 법 집행당국의 정밀한 분석을 거쳐야만 비로소 법 위반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경쟁법에 형벌규정이 없는 이유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과태료나 과징금과 같은 행정제재를 하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만 형벌로 제재하는 것이 형벌의 보충성 원칙에 비추어 볼 때도 바람직하다.

반면 경제법 중 고의성이 있고 중대한 반칙행위에 대해서는 법 위반 억지력을 위해 형벌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 법 위반인 줄 알면서도 숨어서 공모를 하는 가격(입찰)담합이 대표적이다. 2세·3세 승계를 위해 시장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게 팔거나 비싸게 구매하는 행위와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오너 일가의 회사를 밀어주는 행위도 고의성이 농후하다. 고의적인 법 위반이므로 경쟁질서 회복과 소비자 피해 예방 및 부의 편법 승계와 탈세 방지를 위해 형벌로 처벌해도 이상하지 않다.

형벌규정을 계속 정비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경제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정은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과도한 처벌 조항은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형벌 존치가 불가피하더라도 과태료·과징금으로 행정목적 달성이 가능한 경우 행정제재를 우선해야 한다. 과거 20년 동안 40%나 늘어난 형벌규정이 제대로 정비돼 경제형벌이 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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