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3년간 아마존 불법 금 채굴 조사
현장 굴착기 43%가 HD현대건설기계 제품
"굴착기 등장에 원주민 보호구역 파괴 급등"
'아마존 원주민의 삶의 터전 파괴.' 너무 먼 나라 이야기이고 오랫동안 반복된 듯 느껴지지만, 아마존 원주민의 고통은 끝나질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브라질 원주민 90%가 금 채굴로 인한 수은 중독에 시달렸다. 수은 중독은 실명, 유산, 기형아 출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태 자원도 메말라서 지난 1월엔 원주민 어린이 수십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그리고 이 고통에 한국 기업이 관련돼 있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나왔다. 최근 원주민 보호구역 내 불법 금 채취에 활용되는 유압식 굴착기의 43%가 HD현대건설기계 제품이라는 것이다. 애초 5, 6명 규모 영세 사업자들이 불법으로 금을 채취했는데, 최근 이들이 굴착기를 구매하기 시작하며 그 규모가 대폭 커졌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현대건설기계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불법 금 채취를 수사하는 브라질 검찰이 현대건설기계에 관련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현대 측은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아마존 카야포 지역 원주민 지도자인 도토 타칵 이레와 다니클레이 디 아기아르 그린피스 아마존 선임 활동가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 굴착기가 불법 금 채취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브라질, 세계 금 매장량 5위
브라질은 세계 주요 금 생산지 중 하나다. 브라질 광물협회에 따르면 2019년 브라질 금 매장량은 세계 5위, 생산량은 9위다. 2020년 브라질 수출액의 2.3%(49억 달러)를 금이 담당했다.
그렇다고 브라질에 대규모 금광 산업이 활성화된 건 아니다. 5, 6명 규모 영세 채굴 사업자들의 금 생산이 주축이다. 이들은 아마존강 유역에서 사금을 채취한다. 이곳 모래를 금 선별 장비에 넣으면 불순물이 섞인 금 알갱이가 걸러진다. 이 알갱이를 수은과 섞어 화학반응을 일으킨 후, 불로 수은만 태우면 순수한 금이 나온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고 값싼 수은을 사용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한 브라질에서 빈민들의 수익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런 채굴자를 칭하는 '가림포(Garimpo)'라는 명사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채굴 방식은 브라질에 환경·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금 채굴 과정에서 산림이 파괴되고, 주변 원주민들이 수은에 중독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금 채굴은 인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규제를 지켜 시행해야 하지만, 워낙 땅이 넓고 사업이 영세해 일일이 규제할 수 없었다. 그사이 금값은 계속 올랐고, 지난 36년간 브라질 채굴 면적은 11배 증가했다. 그만큼 지표 흙에 묻힌 금도 줄었다.
굴착기 등장에 불법 금 채취 급등
더 이상 금 캘 곳이 없어진 사업자들이 노린 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브라질 헌법상 개발금지구역으로 묶인 원주민 보호구역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유압식 굴착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대규모로 흙을 쓸어 담는 것이다.
브라질 사회환경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1년 채굴로 파괴된 원주민 보호구역 면적은 지난 10년 평균보다 3배가량 늘었다. 채굴 면적은 2014년까지 4,000헥타르(ha) 수준이었는데 2019년 1만2,000ha, 2021년 2만ha까지 늘었다.
원주민 보호구역 내 개발은 브라질 헌법이 금지하는 불법 행위이지만, 환경 규제가 강하지 않은 탓에 암묵적으로 용인된다. 특히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원주민 보호구역 내 금 채굴을 합법화하겠다고 해 논란이 됐었다. 가림포 수는 최근 12년간 5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채굴 사업자들은 굴착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대당 약 70만BRL(브라질 헤알·약 1억8,300만 원)인 굴착기를 사용하면 남성 3명이 40일간 작업하는 일을 24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가림포들은 할부로 굴착기를 구매한 뒤 불법 금 채취로 수익을 올려 장비 값을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연방환경청(IBAMA) 등은 불법 굴착기 수사를 진행해 발견되면 현장에서 불태워 파괴하지만, 역부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금 채취는 원주민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2016년 야노마미 원주민 보호구역 내 불법 채굴장 인근 주민 239명 중 92%의 체내 수은 농도가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2020년 문두루쿠족도 200명 중 60%에서 권고치 이상 수은이 검출됐다. 5세 이하 어린이 10명 중 4명에게서 고농도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했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18년부터 야노마미 원주민 어린이 570명이 불법 채굴과 정부 방치, 지역 부패 등 영향으로 사망했다고 분석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도토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는 "우리의 강과 물고기, 숲, 모든 것이 수은으로 오염되고 있다"며 "아이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여성들이 유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보호구역 굴착기 176대 중 75대가 현대 제품
아마존 원주민 지도자가 한국에 찾아온 것은 불법 금 채취 현장에서 국내 기업 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가 2021년부터 3년간 야노마미, 문두루쿠, 카야포 등 원주민 보호구역을 경비행기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확인된 굴착기 176대 중 75대(42.6%)가 현대건설기계 제품이었다. 중국 류공 제품이 25대(14.2%), 미국 캐터필러 제품이 20대(11.4%)였다. 2019년 현대건설기계의 브라질 시장 점유율은 약 19.4%(2위)였다. 다만 조사에 참여한 장다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전문위원은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며 육안으로 굴착기를 센 것이어서 중복 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불법 채굴 현장에서 중장비 제조·공급 업체의 책임을 조사하고 있는 브라질 지역 연방 검찰청(MPF)은 2020년 현대건설기계를 포함한 중장비 제조업체 6곳에 '불법 지역에서 장비가 사용되는 것을 제재하고 있는지' 질의했다. 그러나 해당 기업 6곳 중 3곳만 답변을 했고, 현대건설기계는 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MPF는 수사 보고서에 "굴착기가 아마존에서 불법 채굴 시장 수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판매돼 왔으며 이에 책임 있는 기업들의 효과적인 사용 통제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니클레이 그린피스 선임활동가는 "브라질은 환경 보호와 관련해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을 제재한 사례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린피스는 현대건설기계의 브라질 중장비 재판매업체인 BMG 판매 사무소가 야노마미·카야포·문두루쿠족 보호 지역 인근에 5곳이나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다울 전문위원은 "이 지역은 보호구역이라 건설 수요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2020년 BMG 대표는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이 지역에서만 채굴업자에게 굴착기 600대를 판매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불법 지역 굴착기 사용, 막을 방법 많다
그린피스는 기업들이 보호구역 등에서 중장비가 작동할 수 없도록 설계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기계 등 중장비 업체들은 장비와 GPS를 연동해 특정 지역에 장비가 진입하면 작동을 멈추도록 통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보호구역에서의 굴착기 작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판매 과정에서 불법 채굴에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거나, 장비 일련번호를 엄격히 관리해 브라질 수사 당국의 불법 채굴 추적을 돕는 방법도 있다고 그린피스는 주장했다.
도토 원주민 지도자는 "카야푸 부족에게 강은 피와 같다. 숲은 살과 같은 것이다. 땅은 뼈다. 중장비가 우리 땅에 들어와 강을 오염시키는 것은 나의 피를 흘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다울 전문위원은 "이 문제는 현대건설기계가 글로벌 기업으로서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며 "현대건설기계와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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