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에 '인간정보'에 붙는 'reportedly' 표기
도·감청 통한 '신호정보'로만 보기 어려워
"정보출처 없어…전언 듣고 작성했을 가능성"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미 양국은 "상당수 위조"라며 문건 내용을 부인했다. 이 같은 진위논란과 별개로, 전문가들은 문건의 '형식' 또한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도·감청을 통한 '신호정보(시긴트·SIGINT)'로만 취득했다고 보기에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직접인용 없이 'reportedly' 사용…"시긴트 통해 얻은 정보로 보기 어려워"
대표적으로 '직접인용'이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에 유출된 문건 가운데 통신 감청 등 신호정보로 파악해 'SI'(특수정보)로 분류한 부분에는 강조하는 표현들이 직접인용(" ")으로 처리돼 있다. 실제 대화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일종의 증거표시인 셈이다.
반면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의 대화에는 직접인용 부호가 없다. 회의내용인지, 통화내용인지, 아니면 대화 시점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풀어가면서 '보고된 바'(reportedly)라는 표현이 첫머리부터 등장한다. 대통령실 관련 문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점이다. 반면 북한과 관련된 문건에는 'according to signal intelligence'(신호정보에 따르면)라고 적혀있다. 정보를 통신장비로 확보했다는 의미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12일 "감청을 통해 얻은 정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디브리핑(de-briefing·결과보고)받은 성격의 보고서 같다"며 "직접인용도 없고 정보의 출처도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시긴트에 기초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스파이나 내부 협조자를 통해 얻은 인간정보(휴민트·HUMINT)를 바탕으로 만든 보고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도 "대화내용을 시긴트로 확보했다면 굳이 'reportedly'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내용을 변조했거나 전해듣고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휴민트는 통상 'HCS'라고 표기한다. 다만 이럴 경우 정보원이 발각될 수 있어 출처를 숨기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정원 출신 황흥익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연구실장은 "애초에 정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되기 때문에 어떤 방식에 의해서 첩보가 수집됐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며 "유출될 가능성도 고려해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SI-Gamma'로 분류…도·감청이 전부는 아닐 수도
물론 신호정보가 배제됐다고 단언하긴 쉽지 않다. 문건 상단에 'SI-G'(SI-Gamma)라고 분류기호가 적혀 있는데, 2008년 미 국가정보국(DNI) 매뉴얼에 따르면 이는 다양한 통신장비가 동원된 SI를 의미한다.
다만 온전히 신호정보로만 획득한 내용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호정보에 다른 방식으로 얻은 정보나 작성자의 판단을 섞어 재가공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내부자 연루 가능성은 남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유출된 문건이 완전히 허위였다면 미 국방부에서 시긴트라는 사실 자체가 조작이라고 발표했을 것"이라며 "도·감청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신호정보로만 작성된 내용으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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