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텍사스 연방법원 판결에 이의 제기
제약사들도 "과학 무시" 성명... 논란 확산
미국 연방정부가 '먹는 낙태약'에 대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취소하라는 텍사스주(州) 연방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미국 사회에서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전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AP통신·로이터통신 등은 미국 법무부가 "(경구용 임신중절약 성분인)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FDA의 승인을 취소한다"는 텍사스주 연방법원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소장을 이날 제5 순회항소법원에 냈다고 보도했다.
앞서 매슈 캑스머릭 텍사스주 연방법원 판사는 지난 7일 먹는 임신중지약 '미프진'의 주요 성분인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FDA의 승인 취소 판결을 내렸다. 미국 전역에서 미페프리스톤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판결문에서 캑스머릭 판사는 태아를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등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판사가 사법적 견해보다 낙태 반대 활동가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부는 항소장에서 해당 판결을 "기이하고 전례 없는 결정"으로 규정했다. 2000년 미국 내 시판이 승인된 미페프리스톤은 현재 여성들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경구용 임신중단약인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승인 취소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다. 법무부는 "FDA의 과학적 권위를 약화하고 미페프리스톤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라고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400곳 이상의 제약회사 경영진도 비판 성명을 냈다. 텍사스주 판결에 대해 이들은 "수십 년간의 과학적 증거와 법적 선례를 무시한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다른 의약품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드러냈다.
임신중단 문제를 두고 쪼개진 미국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보수의 텃밭인 텍사스주와 달리, 워싱턴주 연방법원은 같은 날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사용 승인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로이터통신은 "텍사스주 판결이 워싱턴주보다 18분 먼저 나왔다"고 전했다. 동일 사안에 대해 미국 사법부가 사실상 거의 동시에 정반대 판단을 내린 셈이다. 법무부는 워싱턴주 연방법원에도 '텍사스주 판결 관련 영향을 확인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외신에서는 이 사안이 결국 미 연방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연방대법원이 너무나 확실하게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됐다는 점이다. 현역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에서 임명된 보수 성향 판사로 분류된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은 1973년 임신중단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텍사스주 판결에 대해 "FDA에 대한 공격으로, 다른 약물도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정부는 FDA를 지지하며 법적 싸움에 대비하고 있다. 생식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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