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더슈탄트' '마리 퀴리' '엑스칼리버' 등 일본 라이선스 공연 잇달아
"한국 뮤지컬 브랜드화돼 일본 제작사들 관심"
중국선 '도리안 그레이' '더 캐슬' '아르토, 고흐' 등 관객 만나
현지화 가능한 '스몰 라이선스' 방식 일반화로 수출 급물살
신춘수 대표가 이끄는 '위대한 개츠비' 내년 미국서 세계 초연
"한국 창작 뮤지컬은 주제와 전개, 등장인물과 훌륭한 삽입곡까지 어느 요소를 봐도 균형이 잘 잡혀 있어요. '비더슈탄트'가 한국에서도 초연을 막 끝낸 신작이라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도 첫 공연에서 전원 기립 박수가 나와 저도 감동했습니다. 코로나19로 멀어졌던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마음의 교류와 공유가 가능해지면서 엔터테인먼트의 진정한 힘과 의미를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1938년 독일을 배경으로 17세 펜싱 선수들이 '비더슈탄트'(저항)라는 조직을 결성해 학교 권력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그린 한국 창작 뮤지컬 '비더슈탄트'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을 진행한 이시즈 미나 프로듀서의 말이다. 지난달 16~26일 도쿄의 500석 규모 중극장 닛쇼홀에서 공연된 '비더슈탄트'는 16회 전 회차가 매진됐다. 한국 정부가 일본·대만·마카오 관광객에게 한시적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지난해 8월 서울에서 '비더슈탄트'를 관람한 이시즈 프로듀서는 곧바로 도쿄 공연을 추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닫혔던 국경이 열리면서 한국 창작 뮤지컬 수출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본·중국 라이선스 공연이 부쩍 늘었고, 한국 뮤지컬계의 영향력이 본토인 미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K팝과 K영화, K드라마에 이은 주목할 만한 한류 콘텐츠로 K뮤지컬을 꼽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팬데믹 때 송출된 한국 뮤지컬 영상물...실연에 목마른 일본 관객요구 충족
일본 뮤지컬 시장은 한국 뮤지컬 시장(약 4,000억 원)의 약 1.5배인 6,0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2차원의 만화나 게임을 3차원의 뮤지컬로 전환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2.5차원 뮤지컬'의 점유율이 유독 높고, 순수 창작 뮤지컬 제작 편수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한국 창작 뮤지컬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대면 교류가 활발해진 최근에는 300석 안팎의 소극장 작품 위주에서 중대형 작품으로까지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루드윅'이 일본에서 규모를 키워 1,000석 대극장에서 공연됐고, '마리 퀴리'는 지난달 13~26일 700석 규모의 도쿄 덴노즈 은하극장 일본 초연에 이어 20~23일에는 900석 규모의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 시어터드라마시티 무대에 오른다.
서울예술단의 창작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도 6월 7~25일 도쿄 시어터 크리에에서 일본 초연 무대를 갖는다. 무엇보다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일본 110년 전통의 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의 공연으로 7월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일본 도시마 구립 예술 문화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어서 관심이 간다. 다카하라 요코 한일 공연 코디네이터는 "다카라즈카 같은 유서 깊은 단체까지 한국 뮤지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창작 뮤지컬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면서 많은 일본 제작사가 규모가 큰 작품까지 과감하게 선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공연을 한 한국 창작 뮤지컬 영상물들이 일본에 활발히 송출된 것도 최근 뮤지컬 수출 호조의 배경이다. '마리 퀴리'의 제작사 라이브는 2021년 일본 CS TV의 영화 전문 채널 '위성극장'을 통해 '마이 버킷 리스트', '마리 퀴리', '광주' 등의 공연 영상을 방영했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도겸이 출연한 2021년 '엑스칼리버' 공연 실황을 담은 '엑스칼리버 더 뮤지컬 다큐멘터리: 도겸의 찬란한 여정'의 경우 올해 초 일본 내 47개 도시 72개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다카하라 코디네이터는 "왕래가 어려웠던 팬데믹 시기에 영상으로 한국 뮤지컬을 접한 일본 관객들이 실연에 목마른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 진출의 새 열쇠 된 '스몰 라이선스'
K팝 아이돌이 출연하는 투어 공연 위주였던 2010년대와 달리 최근 한국 뮤지컬의 일본 진출은 '스몰 라이선스'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스몰 라이선스는 원작의 내용부터 무대 구성, 조명까지 그대로 판매하는 레플리카(replica)가 아닌 대본과 음악만 판매하는 방식이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공연 예술 시장이 탄탄한 일본은 연출, 의상, 조명, 안무, 음향 등 분야별 창작진의 역량이 뛰어나 한국 창작뮤지컬을 현지화해 무대에 올리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스몰 라이선스는 중국 시장에서도 뮤지컬 수출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중국에서는 '도리안 그레이', '웨스턴 스토리', '여신님이 보고 계셔', '개와 고양이의 시간' 등 한국 창작 뮤지컬이 라이선스 버전으로 중국에서 공연됐거나 공연될 예정이다. 그중 지난달 8~12일 1,800석 규모의 중국 상하이 대극원에서 공연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한국 원작의 동성애적 요소를 줄였다.
아시아 넘어 브로드웨이로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 시도는 미국도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K팝' 뮤지컬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데 이어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책임) 프로듀서인 글로벌 창작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 입성을 목표로 내년 뉴저지주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 개막한다. 신 대표는 12일 이 작품의 오디션 일정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도 기존의 아시아뿐 아니라 영미권을 겨냥한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올해는 'K뮤지컬 영미권 중기(2개년) 개발 지원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정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유통팀장은 "해외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쇼케이스를 선보이는 'K뮤지컬 로드쇼' 등을 통해 영미권이 도전해 보지 못할 시장이 아님을 깨달았다"며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다른 문화 분야에 비해 금전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점에서 중요도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