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없는 체포·구금으로 6만 명 이상 가둬
2015년 10만명당 105.2명 피살→작년 7.8명
"무고한 사람도 갱으로 몰아...공포정치 우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했던 나라, 엘살바도르가 달라졌다. 지난해 초 정부가 조직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6만 명 이상을 잡아 가둔 게 톡톡한 효과를 봤다. 1년 만에 살인율은 절반 이상 줄었고, 10년새 최고 수치였던 때와 비교하면 1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대통령 지지율도 91%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공포 정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갱단이 지배했던 중남미 '살인의 수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정부, 무자비한 갱단 몰살의 대가’ 제하의 기사에서 이 나라가 지난 1년간 치른 ‘갱단과의 전쟁’에서 드러난 양면성을 보도했다.
엘살바도르는 유엔 통계상 ‘사망자 중 살해된 사람의 비율’(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특히 2015년엔 10만 명당 105.2명이 살인으로 사망했다. 전쟁·분쟁 지역을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단일국가 살인율 1위의 불명예 기록이다. 인구 약 640만 명, 중남미 최소 국가에 ‘살인 수도’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 중심에는 갱단이 있다. 엘살바도르는 북미에까지 세를 뻗친 대형 조직 ‘마라 살바트루차(MS-13)’와 ‘바리오18’의 주요 거점이다. 파생된 소규모 갱단도 수십 곳이며, 조직원은 총 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반 시민들도 무자비하게 착취하거나 살해한다. NYT는 “조직원들이 즐겨 신는 브랜드 운동화를 신기만 해도 끌려 간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해 3월 27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갱단에 칼을 겨눈 것이다. 명확한 증거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허락했고, 체포된 지 72시간 안에 재판을 받도록 했다. 그 결과, 2022년 체포된 이들은 6만5,000명에 달했다. 악명 높던 살인율은 미국, 캐나다와 비슷한 10만 명당 7.8명을 기록했다. 2021년(10만 명당 17.6명)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치안과 맞바꾼 기본권... 그럼에도 국민은 "행복해"
하지만 그늘도 존재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사회가 급속도로 군사화하면서 인권침해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12세 이상의 어린이도 체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의 통과 이후 1,600명의 어린이가 교도소에 갇힌 게 대표적이다.
무고한 이들에게 ‘갱’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NYT는 “경찰에선 지난해 3~9월 매일 정해진 수의 사람을 체포하는 할당제가 시행됐다”며 “문신 등 생김새, 거주 지역을 꼬투리 잡아 붙잡기도 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 게시글이나 익명 전화 제보까지 체포 사유로 인정된다. 갱단과 무관한데도 투옥됐다가 풀려난 인원은 5,0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여전히 ‘갱단과의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갱단의 횡포가 극적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부켈레 대통령 지지율은 91%였다. 주변국 호응도 뜨겁다. 멕시코, 과테말라 등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중남미 국가들은 ‘부켈레 모델’을 채택하기로 했다.
문제는 독재나 공포정치의 미화 가능성이다. 크리스틴 웨이드 미 워싱턴대 교수는 “평화를 담보로 기본권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국민들을 길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2차례나 비상사태가 연장된 엘살바도르에선 군인의 불시검문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1년간 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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