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동자들, 인력 부족으로 연차·병가 맘대로 못 가
연차 쓰면 동료 피해+회사 눈치... 반려당하기도
"연차는 법적 보장 권리... 시민 안전 위해서도 중요"
"올해 16일 연속 출근을 한 적이 있어요. '주간-주간-야간-비번' 패턴의 근무를 마치면 이틀을 쉬어야 하는데, 사정상 열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니 휴일 없이 일한 거죠. 1주일 연속 근무했을 때쯤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요."
수서고속철도(SRT)의 안전 담당자(객실장) A씨는 이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고 했다. 평소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해 온 A씨마저도 몸이 축날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A씨를 '연속 출근의 늪'에 빠뜨린 건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였다. 특히 여객 수요가 많은 주말 근무는 심각하다. 빠질 수 없는 경조사나 병가·휴직 등으로 빈자리가 생기면 누군가 쉬지 못하고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회사 눈치에 반려까지... 연차 못 쓰는 철도노동자들
10일 SRT 노조 등에 따르면 A씨를 비롯한 SRT 철도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번근무제(근무마다 번호를 매겨 일하는 형식)로 일하는 객실장이나 기장(기관사) 등은 주어진 업무 스케줄에 따라 열차에 탑승해야 한다. 기관사는 전체 열차에 한 명, 객실장은 10량(1대)마다 한 명씩 배정된다.
누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근무하지 못하게 돼도 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출발해야 하는데 인력 부족으로 대신 근무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철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권리임에도 연차나 병가를 필요할 때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A씨처럼 대신 근무할 동료에게도 가혹한 일인 데다가 근무 평가에 반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객실장 B씨는 "토요일에 열이 38도까지 오르는 등 몸이 좋지 않아 일요일 병가를 낸 적이 있는데 몇 시간을 찾아도 대체 근무자를 구하지 못했다"며 "결국 아픈 상태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연차 신청을 회사가 반려하기도 한다. SRT 노조 관계자는 "주말 경조사 참석을 위해 연차를 신청해도 반려되는 경우가 많다"며 "주말에 연차 신청이 집중되더라도 일부는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전부 반려하는 편이라 대체로 연차를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1호선 전동열차 운행을 맡는 구로승무사업소 직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고열과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양성반응으로 조퇴를 요구한 기관사에게 사측이 운전을 강요해 실제 운행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한 기관사가 고열을 동반한 몸살로 다음 날 병가를 요청했으나 다른 기관사가 병가를 내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감기약을 복용한 채 일한 적도 있었다"며 "SRT처럼 23일씩 연속 근무한 기관사도 있다"고 말했다.
"공중 안전 책임지는 철도노동자... 대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다수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철도노동자의 업무 특성상 휴식권이 더욱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은 "이들은 공중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어 신체·정신적 건강 문제로 집중력이 저하됐을 때 사고가 발생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해결책으로 충분한 예비 인력 확보 등 인력난 해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 센터장은 "적정 인력이 확보돼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완충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2인 근무체계 등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인력 충원이 되지 않는 이유는 경영 효율성에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라면서 "철도나 병원처럼 사람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곳에는 인건비 효율성 기준을 따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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