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저작권 갈등 끝에 숨진 이우영 작가
표준계약서 개선·창작자 저작권 강화 법 등 시급
정부 뒤늦은 관심, 법제 개선 속도 내기엔 부족
만화 '검정고무신'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의 사망(3월 11일)으로 만화계의 고질적인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고인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 측과 저작권 분쟁을 겪다 세상을 등졌다. 만화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공분을 표시하면서 정부와 국회는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까지는 갈 길이 멀다.
갈등의 씨앗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정고무신' 사업권 일체를 형설앤에 양도한 계약이 문제가 됐다. 이우영사건대응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등 77가지 사업을 펼치는 동안 이 작가는 사업에서 배제되고 그나마 받은 돈은 1,200만 원에 그친다. 게다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창작물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고인은 형설앤 측으로부터 2019년 고소를 당했다.
문제 핵심은 계약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이다. 갑의 위치인 출판·제작사가 사업권 일체 양도와 같은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개인 창작자가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불공정 계약으로 인세조차 제때 받지 못하던 사례가 20여 년 전 출판만화 시장에서 수두룩했는데 최근 급성장세인 웹툰 작가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지난달 30일 특별조사팀을 신설해 '검정고무신' 사태의 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창작자 권익 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만화(웹툰)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허락계약서' '양도계약서' 신설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만화계는 올 초부터 논란이 불거졌던 표준계약서 개정 문제조차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만화 표준계약서 초안을 발표한 후 창작자 단체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았고 오히려 개악이라고 반발했으나 정부 입장은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초안에는 창작에 관여하지 않은 제작사가 쉽게 공동제작자가 되는 항목이 담겨 있고, 이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만화계는 우려한다.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도 가시밭길이다. 국회에는 현재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나 무상으로 양수하는 행위 등 금지행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처벌 조항을 마련한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문화산업 공정유통법) 제정안과 △아직 창작되지 않았거나 창작이 예정돼 있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의 포괄적 양도나 장래 저작물의 포괄적 이용 허락의 무효를 골자로 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두 법안 모두 발의된 지 2년이 넘은 지난 1월과 2월에야 겨우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문화산업유통법 제정안은 가까스로 상임위를 통과했으나 저작권법 개정안은 영상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상임위 문턱도 넘어서지 못했다.
범유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입법 속도가 더뎌 관계부처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줘야 하는데 문체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은 게 없다"며 "검정고무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전체 문화산업 관점에서 정책 방향을 세우고 있는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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