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네" "무죄"만 반복... 열 마디도 말하지 않아
미 언론 "트럼프, 좌절한 모습" "심각한 표정" 보도
플로리다선 "좌파 검사" "트럼프 혐오 판사" 맹공
"내 유일한 범죄? 나라 파괴 세력으로부터 지킨 것"
법정에선 최대한 말을 아꼈다. 반면 장외에선 180도 돌변해 검사와 판사를 거친 언사로 공격하며 정치적 공세에 나섰다. '성추문 입막음' 의혹과 관련해 형사 기소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피고인이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상반된 두 모습을 연출했다. 뉴욕시 법원 청사를 빠져나올 때까지도 침묵을 지켰으나,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자택에 도착하자 평소의 '싸움꾼' 모습을 되찾았다. 21분간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를 소명하는 대신 "급진 좌파 검사" "트럼프를 혐오하는 판사" 등의 말로 사법 당국을 저격했다. 수사와 재판의 신뢰도를 깎아내리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정치적 탄압' 여론을 조성하려는 노림수다.
당당했던 트럼프, 법정에선 몸 사렸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도착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정 앞줄에 마련된 피고인석에 변호팀과 함께 앉았다. 일반 중범죄 피고인과 달리 수갑도 차지 않았고, 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인 '머그샷' 촬영 절차도 생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피고인 권리를 고지한 뒤 "이해했느냐"고 묻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이후 50여 분간 이어진 기소 인부 절차에서도 특별한 발언 없이 재판을 지켜보기만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용한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을 뿐, 열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일부의 예상처럼 떠들썩한 모습은 전혀 없었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에 휘둘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좌절한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하게 상황을 묘사했다. CNN방송은 피고인석에 앉은 트럼프 전 대통령 모습을 전하며 "엄중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심각한 표정"이라고 전했다. 미 NBC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에서 그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법원에 들어가거나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침묵했다. 특유의 미소나 '엄지 척'도 없었다. 언론 노출을 즐기던 평소 모습과는 딴판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지자들 앞에서 21분 연설… 짧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마러라고 자택에 도착하자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달 30일 기소된 이후 첫 대중 연설에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30분 마이크 앞에 섰다. 청중들은 "미국! 미국!"을 연호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조지아)·맷 가에츠(플로리다) 하원의원, 그의 최장수 정치 고문 로저 스톤 등도 함께 자리했다. 지난 대선 유세장을 연상시키는 열기였다.
이날 연설 시간은 21분에 불과했다. 2시간 이상의 즉흥 연설도 마다하지 않던 트럼프 전 대통령 스타일치고는 너무 짧았으나, 메시지는 분명했다. 먼저 그는 "우리나라에서 여태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면서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나라를 파괴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용감하게 지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죄 주장을 '정치적 수사'로 편 셈이다.
그러면서 "급진 좌파인 조지 소로스의 지원을 받는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검장으로부터 시작된 미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 선거 개입"이라는 기존 주장도 되풀이했다.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는데도, 브래그 검사장이 민주당의 대표적 후원자인 '투자의 귀재' 소로스의 후원을 받는 정치 검사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브래그 검사장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대배심 내용을 유출한) 범죄자"라고 표현하는 한편, 이 사건 재판장인 후안 머천 판사에 대해서도 "트럼프 혐오 판사"라고 날을 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은 쇠하고 있고, 이제 극단적인 좌익 미치광이들이 사법당국을 이용해 우리 선거에 개입하려고 하는데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황금시간대를 노린 이날 연설은 CNN·폭스뉴스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반면 NBC·ABC·CBS 등 일부 방송사들은 "트럼프의 근거 없는 주장을 내보낼 경우, 언론사 평판이 위험해질 수 있다(NBC 간판앵커 레이첼 매도우)"는 입장 등을 밝히며 중계하지 않았다.
연단에는 트럼프 대선 캠프의 정치자금 모금 메시지('Text TRUMP to 88022')가 써 있었는데, 연설 시간 동안 이 문구가 그대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측근들이 생중계되는 연설을 선거 캠페인 광고로 활용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활동한 제임스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 이후 800만 달러 이상 온라인 기부금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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