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북동쪽에서 원인 미상 화재
불길 확산 인근 120가구 긴급 대피
“가스만 잠그고 급하게 나와 마스크도 못 챙겼네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추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만난 주민 김모(70)씨는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산 중턱을 바라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낮부터 연기가 나길래 불이 난 줄은 알았지만 집 코앞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며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면서 화재로 대피한 적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오전 11시 53분쯤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에서 화재가 나자,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개미마을과 인근 주택에 대피령이 떨어졌다. 아직 확인된 인명피해는 없지만, 긴급히 대피한 120가구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대피한 주민들은 주민센터와 인근 학교 등에 모여 화재 진압 소식에 귀를 기울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험준한 산이 많은 지방에서나 봤을 법한 대규모 산불이 서울 도심에서 발생하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개미마을 주민 김재식(82)씨는 “노인정에 있다가 피신 방송을 듣고 급하게 내려왔다”며 “언제 다시 마을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네 통장이라는 A씨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연기가 심해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노인정에서 가져온 마스크를 나눠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길이 산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번지면서 자욱한 연기가 한때 서울지하철 3호선 홍제역 부근을 뒤덮기도 했다. 홍제3동 주민 이정훈(72)씨는 “물이라도 퍼다 나르며 돕고 싶은 심정이지만, 헬기로만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제역에서 인왕산 초입으로 향하는 대로변에선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 봉원동에 있는 안산에 다녀왔다는 70대 등산객 박모씨는 “하산하는데 멀리서 붉은 불씨가 보이고 연기가 하늘로 치솟더라”면서 “‘안전에 주의하라’, ‘대피하라’는 안내문자가 계속 오길래 근처에 사는 동생이 걱정돼 와 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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