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유족 유전자 감식 진행]
제주 비행장서 총살됐던 김두옥씨
직계 아닌 방계가족 유전자로 찾아
발굴 411구 중 141명만 신원 확인
"다른 유족들도 채혈로 유해 찾길"
26세 제주 청년 김두옥씨는 1948년 12월 22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 야산 동굴에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4세 막냇동생이 이미 숨이 끊긴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있었던 것. 막내도 죽창에 찔린 엉덩이 부위에 피가 흥건했지만 공포에 질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곁에는 12세, 13세 동생과 아내, 5세 아들까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가족 시신을 수습한 김씨는 막냇동생을 데리고 아버지가 있는 화순리 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무장대가 숨어 있던 한라산) 중산간에서 내려온 사람이 있다"는 누군가의 신고로 김씨는 토벌대에 잡혀갔다. 이후 소식이 끊겼던 김씨가 1949년 7월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 비행장에서 총살당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김씨의 아버지는 부랴부랴 비행장으로 달려갔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다.
행방불명됐던 김씨가 가족의 품에 돌아오기까지 75년이 걸렸다. 2008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굴된 유해 유전자와 김씨의 조카 김용헌(50)씨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감식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제주4·3 희생자 중 직계가족이 아닌 방계가족인 조카 유전자로 신원을 확인한 첫 사례다. 지난달 27일 김씨의 유해가 안치된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 봉안관에서 조카 김용헌씨를 만났다.
-4·3 당시 가족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나.
"아무것도 모르는 네 살짜리 아기부터 힘없는 부녀자까지 일가족이 한날한시 몰살당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김두옥씨 막냇동생 김두화씨)도 죽창에 찔렸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나.
"아버지 5형제 중 4명이 죽어 아버지는 독자가 아닌 독자가 됐고, 평생을 형제들만 찾고 그리워만 하다 돌아가셨다."
-큰아버지와 일치하는 유해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심정은.
"육지에 갈 때마다 들렀던 제주공항 땅 밑에 둘째 큰아버지가 60여 년이나 다른 희생자들과 뒤엉켜 묻혀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둘째아버지 유해를 찾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우연히 들른 병원에서 4·3유해 신원확인을 위해 유가족을 대상으로 채혈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별 기대 없이 채혈을 하게 됐다. 그러다 유전자가 둘째 큰아버지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고 어머니와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랐다. 다른 유가족들도 채혈에 적극 참여해 한 분이라도 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최소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제주 4·3희생자 중 김씨처럼 시신이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는 올해 3월까지 약 4,50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아무 이유 없이 불법 군사재판과 예비검속 등으로 학살돼 제주 곳곳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됐다.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6·25전쟁에 휩쓸려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이들도 상당수다.
김씨의 유해가 발굴된 제주공항은 4·3 당시 대규모 집단 학살이 벌어진 ‘사형장’이었다. 수십 년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제주공항의 비극은 2007∼2009년 진행된 제주공항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드러났다. "1949년과 1950년 정뜨르 비행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민간인 집단학살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어렵게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됐다.
제주공항에서만 387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당시 공개된 발굴 현장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상당수 유해가 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서너 겹으로 뒤엉켜 있었다. 또 M-1과 칼빈 소총의 탄두와 탄피, 완탄이 유해와 뒤섞여 발견됐다. 무자비한 총살과 암매장이 이뤄졌음을 짐작게 한다. 아직 제주공항 부지에 더 많은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주공항 폐쇄 전까지는 항공기 이착륙 때문에 추가적인 유해발굴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2006년 제주공항을 비롯해 제주 곳곳에 암매장된 4·3희생자를 찾기 위한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2021년까지 총 411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141구의 유해만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나머지 270구의 유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봉안관에 이름 대신 쓰인 일련번호와 함께 안치돼 있다.
4·3평화재단은 10월 20일까지 4·3행방불명 희생자의 직계·방계혈족(방계 8촌까지 가능)을 대상으로 ‘4·3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채혈’을 진행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희생자의 자녀, 형제자매, 가까운 친인척 순서로 유전자 일치 확률이 높다"며 "유전자 감식 기술도 예전보다 크게 발전해 김씨 사례처럼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가족이 몰살당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방계가족까지 채혈에 나서야 봉안관에 안치된 무명의 유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달까지 채혈한 유가족은 대부분 직계가족으로, 방계가족은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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