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이 1994년 종단 개혁의 결과로 멸빈(승적 박탈)됐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현 스님)을 대형 사찰인 대구 동화사의 방장으로 추대했다. 의현 스님은 당시 총무원장 3선 연임을 시도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승려들을 폭력배들을 사주해 제압하는 등 종단을 비민주적으로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권승’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종단에서 쫓겨났던 스님이 고위직에 오르면서 조계종 일각에서는 이번 추대가 종단을 권위주의 시절로 퇴행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9일 조계종에 따르면,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는 이날 임시회에서 의현 스님을 동화사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스님인 방장으로 추대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일부 중앙종회 의원은 비공개 비밀투표를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화사는 조계종 산하 26개 교구 가운데 9교구의 본사다.
의현 스님은 ‘징계 의결서를 받지 못했다’며 지난 2015년 조계종에 재심을 요청했고 징계 수위가 ‘승적 박탈’에서 ‘공권 정지 3년’으로 완화됐다. 이어 2020년에는 승적이 회복됐고 종단에서 가장 높은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조계종은 종단의 화합 등을 이유로 이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멸빈자에게 승적 회복을 허용하지 않는 종헌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장 추대 소식까지 전해지자 불교계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대불련동문행동, 정의평화불교연대, 신대승네트워크 등 불교계 사회단체 8곳은 28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종회에서 치욕적인 역사가 반복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1994년 종단 개혁을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해 비민주적 권위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대중공의에 따른 운영을 천명한 일로 규정하고, 의현 스님의 방장 추대가 종단 개혁의 정신을 훼손할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가 501명의 승려를 대상으로 29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 승려 응답자 92.8%가 서의현 방장 인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하는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손상훈 교단자정센터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의현 스님은) 대다수 승려에 의해서 자신이 멸빈된 것에 대해서 한마디 참회도 없고 반성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방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연대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동화사 불자 등이 방장이 동원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홍보하는 불참 운동을 벌여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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