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 이 부분이 너무 화나요. 도대체 근로자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등이 주최한 근로시간 개편안 관련 기자간담회. 과로사 등으로 남편·아들·동생을 잃은 유가족들이 참석해 근로시간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과로로 일하다 숨진 고 최완순씨의 아내 김예숙씨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냈다. 김씨에 따르면 전선 회사에 다니던 남편 최씨는 격주로 주·야간 근로를 했는데, 특근이 있을 때면 토요일 오전 출근해 일요일 오후 8시쯤 귀가했다. 주문받은 전선 길이를 뽑아낼 때까지 기계를 멈출 수 없어서였다. 다음 날부터는 정상 근무를 해야 했다. 김씨는 남편 사망 이후 회사에 찾아가 "어떻게 이렇게 일을 시킬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회사 측은 "원해서 일을 많이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근로시간 개편안이 더 몰아서 일을 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과로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편안, 몰아서 일하게 하는 불규칙 노동"
발제자로 나선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개편안의 핵심이 불규칙 노동(오전 9시~오후 6시 근무 형태를 벗어나는 것)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유연화하기 위해 이미 최대 12시간의 주당 연장 근로시간이 주어져 있는데, 정부 개편안대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면 근로시간이 들쭉날쭉해져 건강뿐만 아니라 생활의 규칙성마저 깨뜨린다는 것이다.
불규칙 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1,042명의 산업재해 승인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발병 전 1~7일의 노동시간(위험기간)과 8~30일(대조기간)의 노동시간을 비교했을 때 주당 노동시간이 대조기간보다 10시간 늘어나면 뇌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4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일·주단위 불규칙 노동을 하는 사람은 장시간 노동하지 않더라도 불안장애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규칙 노동에 하루 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까지 동시에 가능해진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이번 개편안은 건강과 일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불규칙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면서 "근로시간을 69시간, 60시간, 48.5시간 등 총량과 평균으로 논의하지 말고, 노동시간의 길이·밀도·배치·불규칙성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죽을 수 있다는 것 보여줬는데 시간을 왜 늘리냐"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일하는 야간노동도 불규칙 노동 사례로 언급됐는데, 개편안이 확정되면 야간노동자들이 더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였던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건강한 27세 청년이 1년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과로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야간노동에 대한 어떤 제약과 규제도 없고, 회사에 내려진 처분은 특수건강검진 미실시에 대한 과태료 10만 원뿐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왜 시간을 늘리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씨는 사망 직전 1주 동안 62시간 10분, 2~12주간 평균 58시간 18분을 근무했다. 다만 과로사와 관련해 쿠팡 측은 "쿠팡은 물류업계를 비롯해 국내 사업장에서 가장 안전한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곳 중 하나"라며 "유가족 지원을 위해서도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진정한 휴식권이란 규칙적인 노동과 생활 속에서 휴식을 확대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며 "평소 과로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몰아서 휴식하라는 것은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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