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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의 덕담

입력
2023.03.23 16: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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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집권 연장에 먼저 성공한 자의 여유일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일 러시아를 방문, 내년 대선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인민이 당신에게 계속 견고한 지지를 보낼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친애하는 친구'의 주석 3연임을 축하한다는 푸틴을 향한 화답이었다. 다른 국가라면 '이 무슨 내정 간섭이냐'고 기겁했겠지만, 양국 정상에겐 그저 서로의 지도력을 칭찬하는 덕담거리였다.

□ 시 주석은 2013년부터 11년째, 푸틴 대통령은 실세 총리 4년을 포함해 2000년 이래 줄곧 권좌를 지키고 있다. 이들 모두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상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시 주석은 2018년 주석 연임을 두 차례로 제한한 조항을 삭제, 10년 주기 권력 교체 원칙을 깼다. 역시 대통령직을 2번만 연임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 '4년 임기 대통령 연임→총리 4년→6년 임기 대통령 연임'을 거듭해온 푸틴은 3년 전 자신의 연임 횟수를 '0'으로 되돌리는 개헌을 단행했다. 자기 권력으로 자기 임기를 늘렸으니 '독재자'라 불릴 만하다.

□ 이틀간의 방러 일정 중 자주 목격된 '뚱한' 표정이 대변하듯이, 시 주석이 마냥 기꺼운 마음에 푸틴의 장기 집권을 응원한 건 아니겠다. 이번 회담에 바짝 몸이 단 쪽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렁에 빠진 푸틴이었다. '지각 대장' '5m 테이블'로 악명 높던 그가 회담장에 일찍 나가 시 주석을 기다렸다가 지근거리에서 극진히 대접했다. 회담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겠지만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는 이제 중러 관계에서 주니어 파트너"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 우크라이나 전황 악화에 따른 푸틴 실각과 친서방 러시아 정권 수립.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본격 돌입하려는 중국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중국몽' 구상이 완전 실현될 2050년까지, 안 된다면 중간 목표 완료 시점인 2035년까지라도 푸틴과의 '브로맨스'가 지속되길 바라는 게 시진핑 마음일 터. 상대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전범일지라도 말이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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