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확정일자 정보 활용
전세금 확인 뒤 대출 집행
집주인이 세입자 이사 당일 세입자 몰래 은행에서 선순위 대출을 받는 얌체 행동에 제동이 걸린다. 5월부터 시중은행이 정부 정보를 토대로 세입자 입주 예정 여부를 확인한 뒤 대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과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 이런 내용의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기존 우리은행을 포함하면 5대 은행이 모두 참여한다.
전입신고 당일 선순위 대출 뒤통수
집주인이 세입자 이사 당일 세입자 모르게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선순위 대출을 받는 행위는 전세사기 대표 유형 중 하나다. 보통 세입자는 이사 당일엔 등기부등본을 떼 근저당(대출)이 있는지 잘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집주인이 선순위 대출을 받아도 이를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세입자는 본인도 모르게 집주인이 빚을 진 전셋집에 들어가게 된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도 챙기고 은행에서 최대한도로 대출까지 받아 간다. 이후 세입자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선순위 은행 대출 탓에 보증금을 온전히 챙길 수 없다.
이는 이삿날 보통 마무리되는 세입자의 법적 대항력 3가지 조건(확정일자, 전입신고, 실입주) 중 전입신고 효력 발생의 허점을 이용한 일종의 사기다. 확정일자와 달리 전입신고 효력은 그다음 날 밤 12시부터 발생한다. 집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전입신고 당일 은행에서 선순위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주택에 대한 임차인 권리(대항력)가 등본에 기재되지 않아 은행은 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내준다.
"확정일자 무조건 빨리 받아라"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은 은행이 전입신고 효력이 아닌 확정일자를 토대로 세입자의 보증금 규모를 확인한 뒤 집주인에게 대출을 내주는 것이다. 확정일자는 등록 즉시 정부 전산에 기재돼 은행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집주인이 5억 원짜리 빌라를 4억 원에 전세를 내준 경우, 지금까진 집주인이 이사 당일 전세금 잔금을 받고 곧바로 은행에서 최대한도로 주담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은행이 확정일자 정보를 토대로 전세금 4억 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 대출 한도를 계산한다. 당연히 한도가 확 줄어든다.
세입자로선 최대한 빨리 확정일자를 받는 게 관건이다. 입주일이 아니라 아예 계약서를 작성한 당일 확정일자를 받아두라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은행이 최대한 일찍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선순위 주담대를 받더라도 대출 한도가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이 적으면 전세금이 후순위로 밀려도 경매에서 보증금을 온전히 지킬 확률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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