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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종·세대 갈등 넘어선 사랑…현실서도 가능할까

입력
2023.03.24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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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누구와 무엇' 리뷰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누구와 무엇'은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자란 현대적 자녀 세대의 충돌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연극 '누구와 무엇'은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자란 현대적 자녀 세대의 충돌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지난해 연극열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국내에 소개된 에이야드 악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이민자 2세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갈등을 녹여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연극 '누구와 무엇' 역시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이슬람 문화권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에서 택시 운송업을 하는 아프잘과 그의 두 딸 자리나와 마위시, 그리고 백인이지만 이슬람을 종교로 받아들인 사위 엘리가 등장인물의 전부다. '누구와 무엇'은 가족 구성원 4명의 이야기로 종교와 문화, 젠더, 세대, 그리고 인종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주요 갈등을 모두 건드린다. 이러한 갈등은 전쟁의 원인이 되는 심각한 소재임에도 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누구와 무엇'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한 가족 구성원의 문제로 담아내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모든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는 사랑이 이들의 관계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잘은 아내를 잃고 두 딸을 사랑으로 키우지만 가부장적 이슬람 문화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첫째 딸 자리나가 사귀는 남자는 모든 점이 훌륭하고 자리나의 짝으로 적임자였지만 이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버지 아프잘은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고 자기주장이 강한 자리나지만 아버지의 결정을 거부하지 못하고 묵묵히 따른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자신 속에 흐르는 이슬람 문화와 전통은 자리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 후 솔로로 지내는 자리나를 위해 아프잘은 딸의 이름으로 데이트 어플에 가입해서 예비 사위감을 대신해 만나고 적임자를 찾아주려 한다.

연극 '누구와 무엇'은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자란 현대적 자녀 세대의 충돌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연극 '누구와 무엇'은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자란 현대적 자녀 세대의 충돌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작품은 문화의 충돌이나 갈등 대신 모든 문화나 종교, 인종 등 갈등을 유발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좀 더 반성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연극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양아들의 아내감인 자리나브를 일곱 번째 아내로 맞게 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소설 '누구와 무엇'을 비중 있게 다룬다. 무함마드의 지극히 인간적 욕망이 쿠란에 기록돼 있지만 신자들은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자리나는 이 소설을 통해 무함마드의 인간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무함마드나 이슬람 종교에 대한 비판에 있지 않다. 그가 의도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왔던 절대적 권위의 종교에 대해 질문해도 되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비단 이슬람교나 문화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종교나 문화, 인종적 갈등은 타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누구와 무엇'은 이슬람 문화를 반성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는 모든 문화와 종교로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또 작품은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비판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 '누구와 무엇'은 특정 문화의 우월성을 얘기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이슬람의 가부장적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리나가 아버지가 선택해 준 엘리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서는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아프잘 또한 사위인 엘리에게 남편으로서 권위 있게 행동하라고 충고하지만 둘째 딸 마위시가 남편과 원하지 않은 성적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알고는 원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한다. 이슬람과 서구 문화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문화의 융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서로 다른 두 문화의 가치관 위에 가족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갈등을 감싸 안으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종교도 인종도, 세대도 넘어서는 사랑, 이 이상적 풍경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누구와 무엇'은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창작ing' 첫 작품이다. '창작ing'는 기존 상연작 중 아쉽게 추가 기회를 얻지 못한 숨은 명작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국립정동극장의 신설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그린피그가 혜화동1번지에서 짧게 공연했던 '누구와 무엇'이 이번 프로그램의 첫 기회를 얻었다. 공연은 31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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