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주69시간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개편안이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에 사실상 좌초했다. 9개월 전부터 논의돼 입법예고된 근로시간 개편안이 불과 열흘 만에 뒤집힌 것은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개편"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선택근로제·탄력근로제 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유연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선택' 운운할 현실 외면한 정부... 결국 정책 폐기 수순
17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당초 고용부가 내세운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문제는근로자의 선택권이 없고, 획일·경직적이라는 점이다. 2018년 주52시간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이 단축됐지만, 전 업종의 연장 근로시간이 주1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다변화하는 산업구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노사 합의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바꿀 길을 열어주면, 바쁠 때 조금 더 일하고 여유로울 때 길게 쉴 수 있을 거라 봤다. 다만 노조 조직률이 낮으니, 원활한 노사 합의를 위해 근로자대표제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동시에 내놨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의 생각이 '장밋빛 상상'에 불과하다고 봤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려면 기본적으로 ①주52시간제가 정착된 상태에서 ②원할 때 휴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①주52시간제를 지키지 않거나 '포괄임금'을 이유로 일한 만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사업장이 여전히 많고 ②쌓인 연차조차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근로자대표제가 생긴다 해도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하기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왔다. 노동 현장에선 아직 근로시간 선택권을 논할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정부 개편안이 사측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게임회사에 다니는 20대 A씨는 "게임 론칭 시점엔 3, 4개월씩 야근할 정도로 바쁘고 삶이 피폐해지는데, 론칭 후에도 연차 사용에 눈치가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한가로울 줄 알았던 시기에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느냐"고 말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있는 소수를 뺀 대다수 사업장은 여전히 포괄임금을 이유로 근로시간 측정, 수당 지급을 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개편안은) 장시간 노동을 해도 된다는 시그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실천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개편안의 기틀을 마련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소속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구회 안은 근로시간 총량을 넘어 자율성을 논한 것으로 한 차원 높은 단계의 근로시간 논의였지만, (현실에 부딪혀) 총량 논의로 회귀한 듯해 안타깝다"면서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없고,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정부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유연근로제 확대' 지푸라기 잡을까
연장근로 총량관리 방안이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지만, 고용부는 근로시간 유연화 자체를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의 선택권과 건강권의 조화라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보완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근로제·탄력근로제 등 기존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이번 개편안에도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연장(전 업종 1개월→3개월·연구개발 3개월→6개월), 탄력근로제의 사전 확정사항(근로일, 근로시간) 변경 절차 신설 등은 이미 포함돼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선택근로제 장기 적용 업종을 늘리고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을 완화하는 방법이 가능해 보인다"면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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