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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기만 할까?' 현대 한국어로 새로 만나는 이상의 일본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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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기만 할까?' 현대 한국어로 새로 만나는 이상의 일본어 시

입력
2023.03.15 17:25
수정
2023.03.15 17:3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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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김동희 '영원한 가설' 출간
일본어 시 28편, 원문과 새 번역 묶어
"난해한 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영원한 가설·이상 지음·김동희 옮김·읻다 발행·160쪽·2만 원

영원한 가설·이상 지음·김동희 옮김·읻다 발행·160쪽·2만 원

'기이한 천재'로 불리는 시인 이상(1910~1937)의 일본어 시 28편이 새롭게 번역됐다. 1950년대 문학평론가 임종국과 유정의 번역으로 '이상전집'(1956)에 실린 후 가필이나 주석 작업은 있었으나 원문을 바탕으로 전면적인 번역 작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현대 한국어로 쓰여진 번역시는 가독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상 시선집 '영원한 가설'을 기획한 출판사 읻다의 김현우 대표는 15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어가 근대어로 안착하는 시기에 세계 문학장 안에서 한국의 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최초의 실험자인 이상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일본어로 쓰여졌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소외됐던 시 28편에 주목했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잡지 '조선과 건축'에 네 번에 걸쳐 연재한, 시인 생전에 공개된 일본어 시 전부다. 소설 '12월 12일'을 발표한 이듬해 공개된 최초의 시 작품들이라 이상 시의 초기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번역은 정지용, 이상 문학을 연구해 온 김동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맡았다. 번역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1년 넘는 시간 다른 문학평론가들과 역자가 의견을 교환하며 작업했다. 김동희 연구교수는 "일본어 시를 자세히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있다"면서 이상 문학이 난해하게만 알려진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시집 '영원한 가설'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김동희(오른쪽) 박사와 김현우 읻다 출판사 대표가 이상의 기존 전집들과 이번에 출간한 시집을 들고 있다. 진달래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시집 '영원한 가설'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김동희(오른쪽) 박사와 김현우 읻다 출판사 대표가 이상의 기존 전집들과 이번에 출간한 시집을 들고 있다. 진달래 기자

새 번역은 가독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한자는 한글로, 옛날 어투의 표현들은 모두 현대어로 바꿨다. 예컨대 시 '두 사람···2···'에서 '보기숭할지경으로'는 '볼품없을 정도로'로 변경했다. 시 '흥행물 천사' 일본어 원문의 귀신 귀(鬼)자는 도깨비로 해석하는 대신 귀신으로 썼다. 70년 전과 달라진 어휘 사용을 반영한 것이다.

읽기 쉽게 띄어쓰기도 반영했다. 이상을 비롯해 우리말 띄어쓰기 체계가 잡힐 때쯤인 1930년대 활동했던 시인들의 작품에는 띄어쓰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이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안 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제까지 이상의 시는 유독 띄어쓰기 없이 유지돼 왔다. 의역을 직역으로 바꾸고 해석을 달리한 대목들도 있다. '한몫보아준心算(심산)이지만'(시 '광녀의 고백')이라는 구절은 '발벗고 나설 심산으로'로 바꿨다.

연재순으로 정리돼 1년 연재기간 동안의 전환들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시인 이름이 김해경(이상의 본명)에서 이상으로 바뀌고, 세로 조판에서 가로 조판으로 틀도 달라졌다. 가장 마지막에 공개된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런 변화를 함축한다. 김 연구교수는 "백화점의 이미지를 쓴 이 작품에는 도시 경관에 대한 이미지가 반영된 느낌"이라며 "시의 경향성이 전과 달라진 느낌을 준다"고 해설했다. 미학적인 이상 문학의 특징이 싹튼 시점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학술자료가 아닌 온전한 시집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해석이나 각주를 전혀 달지 않았다. 이상의 시구에서 따온 제목, 미학적인 판형과 표지 디자인도 모두 독자들이 이상의 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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