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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손잡고 산책하는 스페인 지중해 해변

입력
2023.03.1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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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알람 시계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런데도 스페인 남부 해안 도시 베날마데나에선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일출 직후 하늘의 아름다운 변화 때문이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태양이 군청색과 회색 섞인 하늘을 파랗게 바꿔 가는 모습은 오래 여운을 남기는 일몰과 달리 조금만 걷다 보면 금방 사라지는, 찰나 같은 장면인 데다가 날이 좋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혹시 오늘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매일 아침 숙소를 나섰다. 설령 못 봤다고 해도 가벼운 걷기로 얻게 된 상쾌한 기분 덕에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 걷고 들어오면 마트에서 장 봐온 식재료를 꺼내 한 상 차려 먹은 다음,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그때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한국과는 7시간 정도 시차가 발생하므로 스페인 시각으로 오전 11시만 되어도 택배사나 배송대행지 등에 전화 연결을 할 수 없어져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한국으로 연락해서 답변받거나 내용을 전달해야 할 일을 추려내는 일이다. 어느 도시에서나 항상 노트북 시계가 한국에 맞춰져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물건 파는 일이 주업인 만큼 들어온 주문을 관리하는 일과 주문이 들어오도록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고 그 외에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업과 글쓰기 등을 병행하다 보면 요일 바뀌는 것도 놓칠 만큼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회사에 다닐 때 우리에게 여행이란 일에서 벗어나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것이었지만 생활과 여행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은 의식적으로 이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여행지에서조차 끊임없이 일에 매달리기 쉬워졌다. 그래서 오후 4시 전후가 되면 하던 일을 잠시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베날마데나는 한국인에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길게 이어져 있어 주말이면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전망 좋은 리조트가 많고 비수기와 성수기의 숙박비 차이가 큰 곳이라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되기 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일 때 숙소를 예약하고 리조트 가까이 위치한 해변을 매일같이 찾았다. 물놀이는 아직 이르지만 따뜻한 지중해 햇살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시절이어서 수영 대신 커다란 비치 블랭킷을 모래사장에 깔고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좋아하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한 시간 남짓 앉아있다가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 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다시 또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거나 오후까지 쭉 일한다면 저녁 식사 이후 여유롭게 쉴 수 있겠지만 낮에 쉰만큼 하는 거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도시와 환경에 따라 비슷한 듯 다른 상황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하루 중에 소소한 여행과 일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배운 지금은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하루에 한 번은 꼭 남편과 함께 산책한다. 여행하기 위해 일하고, 잘 일할 수 있도록 여행을 활용하면서 그렇게 오늘도 낯선 도시에서 우리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모아람 디지털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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