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히어라, 넷플릭스 '더 글로리' 라운드 인터뷰
알콜과 약에 중독된 학교폭력 가해자 역할
"함께 호흡한 송혜교에게 위로 받아"
데뷔 15년차인 배우 김히어라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한 포장 도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순간이 더욱 영광처럼 남았다.
지난 14일 김히어라는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김히어라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사라를 맡았다. 알콜과 약에 중독된 화가 이사라로 분한 김히어라는 초점없는 눈동자와 두서없는 말투, 나른한 제스쳐와 시선처리 등 극중 캐릭터를 높은 싱크로율로 소화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날 인터뷰 현장에서 김히어라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촬영을 위해 숏컷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김히어라는 "저 때문이라기보단 모든 삼박자가 맞춰졌다. 글로벌 인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감사하다"면서 "감독님과 작가님, 혜교 언니 등 모든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1 때부터 인기를 실감했단다. 그는 "과거 춤추는 사람인 줄 아셨는데 요즘은 뒷모습을 보고 쫓아오신다"면서 "작품 공개 다음날 제가 탄 지하철 칸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글로리'를 보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그 순간을 떠올린 김히어라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는 것을 보며 작품의 흥행을 피부로 체감했다. 특히 가족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김히어라의 언니는 직접 동생의 기사를 찾고 또 공유하면서 김히어라의 흥행작 탄생을 축하했다. "최근 언니가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최고의 발견'이라는 이야기를 봤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더라고요. 주변에서 너무 기뻐할 때 저 역시 울컥하죠. 그러면서도 내가 감당할 준비가 됐나,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 더욱 냉정해졌어요."
사실 김히어라는 처음부터 이사라 역을 기대하지 않았다. 미팅 당시 김히어라는 이사라를 비롯해 박연진 문동은의 내용이 담긴 대본을 읽었다.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극비로 진행됐고 김히어라는 이사라 역을 '러블리한 캐릭터'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후 안길호 감독의 요청으로 김히어라는 이사라를 만났고 나른하면서 위트 있는 부분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답게 표현했다. 저희가 가해자들이다 보니까 이 친구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거나 이유를 찾으면 위험하다. 대본 속 대사들을 믿고 해야겠다. 진짜 구원 받을 것을 믿고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사라였을까. 안길호 감독과 김은숙 작가는 김히어라에게 '너의 눈빛과 눈이 우리가 생각한 사라와 비슷했다'고 말하면서 캐스팅을 제안했고 대본을 정식으로 받게 됐다. 김히어라는 "그 자리에서 감독님이 대본을 주고 스태프들이 축하를 해줬다. 눈물이 찔끔 났다. 너무 영화 같았고 제가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제가 무명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매번 저를 걱정했을 것이다. 연기를 헛으로 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라면서 감격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작품이 학교폭력을 다루고 또 이사라 역할이 약물 중독과 폭력에 무딘 인물이라는 설정이 부담스럽진 않았냐는 질문에 김히어라는 "역할을 맡는 부담감보다는 내가 어떤 선상에서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헀다. 과하지 않게 정당화 하지 않고 보기 불편하지 않아야 했다. 배우로서 사라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 설정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히어라는 톤과 표현에 대한 고민을 가졌고 안길호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탄처럼 악행을 저질러야 할지, 또 자연스럽게 악인의 면모를 내비쳐야 할지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김히어라는 최선의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그가 바라본 이사라는 고양이 혹은 뱀의 느낌이었다. 의도적으로 누와르 장르의 남성 캐릭터를 찾아보면서 천박한 말투를 체득했고 대본 속 이사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제가 점점 메이크업도 없어지고 다크써클만 있었어요. 새로운 각도의 저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죠. 또렷해지고 훨씬 업된 상태나 뱀이 나오고 환각을 볼 때처럼 나른한 상태도 근육 하나하나가 내것이 아닌 연기였어요.특히 중독된 사람은 뇌가 굳어가기 때문에 리액션이 느리다고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느리게 행동했어요."
김히어라가 더욱 악랄한 가해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 문동은을 맡은 송혜교의 처절한 연기 덕분이었다. 공개 직후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문동은의 교회 협박 신은 송혜교와 김히어라의 첫 촬영이었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김히어라 스스로도 어떤 티키타카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현장의 흐름, 또 송혜교의 리드 하에 자신의 것을 내보냈고 명장면이 탄생했다. 김히어라는 송혜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혜교 언니가 준비한 동은이 너무나 동은 그 자체였다. 미세한 떨림, 한 번도 가해하지 않은 공격성이 저를 훨씬 더 가해자로 만들어줬다. 그 사람이 제 머리 잡았을 때 손을 떨고 있었다. (연기적으로) 저절로 나오는 티키타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히어라는 송혜교를 향한 존경심을 연이어 내비쳤다. 그는 "송혜교 언니는 너무 오래전부터 탑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차갑고 차분할 것 같았다.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현장에 가니 계속 밖에 계시면서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더라. 언니는 제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라고 했는데 위로를 받았다. 감동적이었다. 본인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법도 한데. 지금도 가끔 언니가 모니터를 해주고 화보 칭찬도 해줬다. 매일 연락 오면 강아지처럼 답장한다"고 언급했다.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를 두고 영광스러운 필모그래피라고 표현했다. 흥행은 예상했지만 자신에게까지 스포트라이트가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결과다. "이런 순간이 또 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고 말한 김히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것은 미성숙했던 순간들, 또 시행착오들이 결국은 내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지금 저를 배우로 있게 해준 것이 아닐까"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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