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호이 콴 아시아계 2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 수상
'인디아나 존스' 깜짝 아역 스타... 성인 된 후 역할 끊겨
"엄마, 저 오스카 받았어요... 모두 꿈을 유지하세요"
“저희 엄마가 84세 요. 집에서 (TV로) 시상식을 보고 있어요. 엄마, 저 아카데미상 받았어요.”
시상자인 아리아나 더보즈는 “키 호이 콴”을 호명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콴은 벌떡 일어나 동료 배우 량쯔충(楊紫瓊), 제이미 리 커티스 등과 포옹한 후 무대에 올랐다. 트로피에 격렬하게 2차례 키스를 했다. 얼굴은 상기됐다.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고맙다”를 연발하며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외쳤다. 콴의 남우조연상 수상은 1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아시아계 배우가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1985년 ‘킬링필드’로 수상한 베트남계 배우 행 응고르에 이어 두 번째다.
콴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1971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났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그의 가족은 보트를 타고 조국을 벗어났다. 콴은 홍콩 난민 캠프에서 1년을 보낸 후 미국에 정착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미국에서 재회했다. 콴은 ‘인디아나 존스’(1984)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은 계획은 없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열린 오디션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눈에 들어 덜컥 캐스팅이 됐다. 콴은 ‘인디아나 존스’에서 꼬마 택시 운전사 숏을 연기하며 깜짝 스타가 됐다. 소년들의 모험을 다룬 ‘구니스’(1985)에도 출연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아역으로서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성인이 되자 일감이 뚝 끊겼다. 홍콩 영화 ‘무한부활’(2002)을 끝으로 연기 이력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콴은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며 새 길을 모색했다. 스태프로 일하며 영화현장에 남았다. 홍콩 유명 감독 왕자웨이(王家衛)의 ‘2046’(2004)에 조연출로 참여했고, 여러 영화에서 무술 연기를 도왔다.
연기 재개는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니얼 콴 감독이 2019년 트위터를 하다 콴을 발견했다. 웨이먼드 역할을 할 배우를 찾던 중이었다. 콴은 출연 제의를 받았고, 20년 가까이 지속됐던 경력 단절을 끝내게 됐다. 콴은 이후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2021)에도 캐스팅됐다. 콴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할리우드 캐스팅의 조건인 건강보험을 상실해 연기 복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콴이 연기한 웨이먼드는 아내 에블린(량쯔충)과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다. 다중우주를 오가며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콴은 이 역할로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SAG)상 남우조연상 등 50개 넘는 상을 손에 쥐었다.
콴은 “저의 여정이 보트에서 시작됐다”고 오스카 수상 소감을 밝히며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그는 “(여정이) 여기 할리우드 가장 큰 무대에서 끝났다”고 감격스러워하기도 했다. 콴은 수상 영예를 아내 에코에게 돌렸다. 그는 “저는 제 인생의 사랑, 저의 아내 에코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며 “아내는 매달, 해마다 20년 동안 저의 시간이 올 거라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여러분은 꿈들을 믿어야만 합니다. 저는 제 꿈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시상식장) 밖에 있는 모든 분들, 제발 꿈을 유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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