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이빨 몇 개를 뽑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밥 잘 먹고 건강한 상태예요.
지난 1월,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발치 수술을 받은 반려묘 ‘소금이’(9)의 보호자 손보경 씨에게 근황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발치까지 해야 할 만큼 소금이를 아프게 했던 질병은 ‘치아흡수성병변’. 흔히 구내염, 치주염과 함께 고양이에게 잘 걸리는 구강질환으로 알려진 질병입니다.
치아흡수성병변은 간단하게 말해 이빨이 녹아내리는 질병입니다. 고양이 이빨은 크게 겉면의 ‘법랑질’과 속의 시멘트질로 나뉘는데, 이들은 모두 단단하게 치아 조직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조직들이 녹아내리면서 치아가 사라지는 질병이 치아흡수성병변입니다.
보경 씨는 “내가 너무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것 같다”며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이의 치아흡수성병변을 확진받기 전, 잇몸에서 출혈이 나오는 걸 봤지만, 양치를 잘 해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소금이의 수술을 집도했던 김재윤 우리동생 원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김 원장은 “소금이는 원래 구내염이 있었고, 출혈과 치아흡수성병변은 연관 고리가 없다”며 “물론 출혈이 있으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면서 치아가 녹아내린 모습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보호자의 관리 문제로 치아흡수성병변이 생겼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원장이 ‘보호자 탓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치아흡수성병변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입니다. 구강 내에서 치아흡수성병변을 일으키는 세포는 ‘상아질파괴세포’입니다. 젖니의 뿌리를 흡수해 영구치가 자라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성묘가 되어서도 상아질파괴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치아가 녹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상아질파괴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는 원인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원인이 불명확한 만큼 현재 가장 확실한 치료법 역시 발치입니다. 소금이도 발치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전발치까지는 아니었지만, 절반 가량의 치아를 잃어야 했죠. 다행인 건 그래도 치료 이후 소금이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입니다. 보경 씨는 “그때보다 삶의 질이 나아진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김 원장 역시 “발치를 했다고 해서 사료를 못 먹는 건 아니다”라며 “고양이 이빨의 대부분은 사냥을 위해 있는 것이라 사료를 먹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날 키우라냥” 운명처럼 다가온 길냥이.. ‘양치의 고수’와 만나다
보경 씨와 소금이가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4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보경 씨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대신,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던 캣맘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보경 씨보다 앞서가더니, 보경 씨의 집 문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동네 길고양이들과는 인사를 나눠봤지만, 처음 보는 이 새끼 고양이는 집 문을 열라는 듯 울어댔습니다.
그때 일을 돌아보니, 어쩌면 소금이가 ‘자신을 키우라’고 제게 다가온 것은 아닌가 싶어요. 문 열고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았거든요. 사람 손을 잘 타기에 누가 키우다 잃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 전단지를 만들어 붙여도,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 집에 눌러앉아 버렸죠.
반려묘가 된 이후, 소금이는 큰 병치레를 하진 않았습니다. 길에서 생활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귀 진드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소금이를 괴롭힌 질병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구내염이 조금씩 나타나는 정도였지만, 사료를 못 먹을 정도로 고통스럽진 않았고 간혹 잇몸에서 피가 나는 선에 그치곤 했습니다.
이처럼 소금이의 구내염이 심각해지지 않았던 건 보경 씨의 남다른 ‘양치 습관’ 덕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닦는 걸로 습관을 들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좀 유연해졌지만, 새끼 고양이 시절에는 매일 이를 닦아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양치는 웬만한 집사들도 어려워하는 일입니다. 어떤 고양이들은 치약만 봐도 하악질을 하며 맹수로 돌변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소금이를 비롯해 보경 씨의 고양이들은 모두 순한 양처럼 집사의 손길을 받아들인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그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요?
보경 씨는 가장 중요한 게 ‘신뢰’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양이와 집사가 신뢰를 구축하게 되면, 고양이는 집사가 하는 행동을 ‘고양이를 위한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대표적인 일화로 그는 고양이들이 높은 공간에서 놀다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걸 놓치지 않고 고양이를 구해주는 행동을 꼽았습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고양이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고양이들의 행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아, 저 인간은 내가 아프거나 위험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고 하는 행동들이죠.
두 번째 조건은 규칙입니다. 보경 씨는 아깽이 시절부터 천천히 치약을 이빨에 대는 단계부터 차근차근 고양이들에게 양치 습관을 들였습니다. 이때마다 고양이들에게 캣닢 장난감으로 보상을 해주는 걸 꼭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들인 습관은 규칙으로 남아 고양이들도 양치를 하고 나면 캣닢 장난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네요.
이렇게 양치 습관을 들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보경 씨는 ‘노후’를 들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 집 고양이들도 격렬히 거부하면서, ‘내가 고양이들을 괴롭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면서도 “구강 질환은 한번 걸리면 고양이들 밥도 못 먹는 심각한 질환이니 꾸준한 양치질로 노후가 편하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집사들에게도 양치의 중요성이 꼭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수 집사도 고민은 있다.. “하나하나 임무 완수할 것”
'모범 냥집사' 보경 씨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약 먹이기’입니다. 다른 고양이들처럼 약을 먹이는 방법들을 다 배워서, 고양이들에게도 시도해 봤지만, 문제는 소금이가 약을 먹자마자 바로 토해낸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위액이 나올 정도로 토해낸다고 하니,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보경 씨는 우리동생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약이 필요하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방법을 택해야 했습니다.
건강을 되찾은 소금이에게는 또 다른 미션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체중 감량’입니다. 현재 소금이의 체중은 7.5kg. 일반 고양이에 비해 조금은 살이 찐 편입니다. 간 수치도 조금 오른 상태라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을 갖춘 보경 씨가 있기에, 소금이의 노후는 분명 편안할 듯합니다.
일단 제한 급식부터 시작했어요. 세 마리를 한꺼번에 키우고 있어서 밥을 따로 주는 게 힘든 일이지만, 살을 빼야 더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으니, 이것도 해내고 말 거예요. 그게 제 발로 우리 집에 걸어들어온 소금이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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