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지방은행 자금난이 불씨 당겨
연준의 긴축과 파월 경고가 위기 더 키워
대형 은행 자금 사정은 양호...불안심리가 변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매파' 발언 이후 뉴욕 증시가 발작하고 있다. 긴축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는 예측에 기술주가 급락하더니, 9일(현지시간)에는 금융주가 폭락하며 4대 은행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70조 원 증발했다.
파월 의장의 고강도 긴축 경고에 증시가 일시적으로 발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금융시스템과 연관된 금융주 폭락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금융주 폭락의 원인이 은행의 유동성 문제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금융주,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낙폭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4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그룹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스파고는 6.2% 하락했고, JP모건은 5.4%, 씨티그룹은 4.1% 급락했다. 이날 주가 폭락으로 4대 은행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520억 달러(약 68조6,000억 원) 이상 증발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금융 부문은 6% 떨어졌는데, 이는 팬데믹 초기 금융시장이 흔들렸던 2020년 6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주가 폭락의 도화선은 실리콘밸리 지방은행인 'SVB 파이낸셜(이하 SVB)'이 당겼다. 22억5,000만 달러(약 3조 원)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약 18억 달러(약 2조4,000억 원)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유한 '매도가능증권(AFS·Available For Sale)'을 판다고 발표하자 주가가 60% 이상 폭락했다.
AFS는 회사(은행)가 경영상의 이유로 만기 전에 언제든 팔 수 있는 자산(주로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이므로 매각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18억 달러의 손실이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불렀다. "은행 사정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 정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산 매각을 추진하느냐"는 의구심이 시장에 확산한 것이다. 통상 하나의 은행이 자금난으로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금융권 전반에 확산하기 때문에 4대 은행을 포함한 다른 금융주 역시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파월 긴축 경고도 불안심리 가중...경제 위기 전조 우려도
이번 사태는 연준이 단행해 온 고강도 긴축과 무관하지 않다. 연준 긴축으로 시중 자금이 메마르면서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되고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등의 돈줄도 막혔다.
결국 벤처기업들은 은행에 예치해 둔 자금을 지속적으로 인출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상대하는 SVB는 추가 인출에 대비해 AFS를 매각하더라도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고객이 인출을 요구하는데 그 돈을 못 주는 것은 은행 파산을 뜻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손실을 키운 데에는 파월의 역할이 컸다. AFS 대부분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투자돼 있는데, 파월 의장의 고강도 긴축 경고 이후 미 국채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SVB는 18억 달러의 큰 손실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SVB 불똥'을 맞은 4대 은행 등 대형 금융사들의 자금 사정은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과도한 우려에 따른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변수다. 은행 업계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확산하면 대형 은행 등에서도 인출 수요가 커질 수 있고, 이는 대형 은행들의 실제 자금난으로 연결될 수 있다. 지난 2007년 경제 위기 역시 금융 부분에서 시작된 만큼 이번 사태를 간단히 넘겨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는 크리스토퍼 웰런은 "SVB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대형 은행들은 큰 걱정이 없지만, 작은 규모 은행들은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어,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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