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비중 더 높아져, 11선 조합장 탄생도
매표 관행 여전... 선거일까지 돈 건네기도
선거법 개정해 현직 프리미엄부터 없애야
세 번째 전국동시조합장선거도 역시나 ‘돈 선거’로 얼룩졌다. 직전 두 차례 선거에 비해 줄었다고는 하나 적발된 부정행위 중 ‘금품수수’가 70%에 육박할 정도로 이번에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 이상 후보자의 자정노력에 기대기 어려운 만큼, 법 개정 등 제도적 개선이 절실해 보인다. 현직 조합장에게 유리한 선거법을 바꾸고 처벌 수위를 강화하지 않으면 4년 후에도 폐단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무투표 당선만 290곳... 현직 강세 여전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제3회 조합장선거 개표 결과 농협, 수협, 산림조합에서 1,346명이 당선됐다. 후보가 한 명인 무투표 당선자도 290명이나 됐다. 투표율은 79.6%로 1, 2회 선거(각각 80.2%, 80.7%)와 비슷했다.
경남 진주시산림조합에서 42세 최연소 조합장이 당선된 사례가 나왔지만, 올해 선거에서도 현직 조합장 강세 현상은 두드러졌다. 농협 당선인 1,114명 가운데 현직은 693명으로 재선율이 62%에 달했다. 수협도 90명 중 47명(52%), 산림조합은 142명 중 91명(64%)이 현직이었다. 2회 선거 때보다 재선율(농협 58%, 수협 52%, 산림조합 56%)은 외려 더 높아졌다.
3선 이상 당선인도 흔하다. 조합별로 최대 40%를 차지했다. 서울 관악농협에선 1982년부터 10회 연속 조합장을 지낸 83세 박준식 당선인이 ‘11선’에 성공해 2027년까지 무려 44년 재임을 보장받게 됐다. 충북 제천 봉양농협 조합장인 홍성주 당선인도 무투표로 10선 고지에 무혈 입성했다.
돈 선거 언제까지... 금품수수 비중 70%
선관위 감시를 받는 위상이 무색하게 3회 선거도 숱한 금품이 오갔다. 조합장선거는 돈 선거 오명을 벗으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5년부터 선관위에 위탁해 실시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선거일까지 선거법 위반 혐의로 432명이 단속됐다. 22명은 이미 검찰에 송치됐고, 수사가 진행 중인 선거사범도 382명이나 돼 적지 않은 수가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중앙선관위가 직접 적발한 불법 행위도 고발 146건 등 545건으로 집계됐다. 직전 선거(744건)보다 다소 감소했지만, 추가 신고와 고발 가능성을 감안하면 유의미한 수치로 볼 수 없다. 당선인 상당수도 수사 대상에 올라 당분간 조합장선거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의 주범은 역시 돈이었다. 금품수수가 전체의 68.5%(296명)를 차지했는데, 심지어 선거 당일까지 매표 행위를 했다. 경북 청도에서는 이날 조합원에게 현금 150만 원을 건넨 조합장 후보 측근이 적발됐다.
후보 배우자가 전화 선거운동을 하다 고발 조치되고(경북 경주), 투표소 입구에서 특정 후보 선거운동을 하던 2명이 이를 제지하는 선관위 직원을 폭행한 사건(충남 예산)도 있었다. 전북 남원 운봉농협에선 금품 살포 혐의를 받는 후보자 2명이 전부 사퇴해 아예 선거가 무산됐다.
"법 바꿔서라도 금품 유혹에서 벗어나야"
조합장선거가 돈 선거 꼬리표를 떼는 가장 빠른 방법은 법 개정이다. 현행 위탁선거법은 후보자 본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선거운동 방식도 어깨띠 착용과 문자 발송, 명함 배포 등으로 한정된다. 엄격히 규제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월등한 인지도를 가진 현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도전자는 정책과 비전을 알릴 기회가 거의 없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여럿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탓에 대부분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책토론회 도입, 예비후보자제도 신설 등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해야 금품선거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위 행위에 대한 제재 실효성도 높여야 한다. 처벌 수위부터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 선거법 전문가는 “당선 무효로 인한 재선거 비용과 신고자 포상금을 원인 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등 강경한 처벌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은 돈을 받은 사람도 3,000만 원 범위 내에서 금액의 10~50배에 상당하는 과태료를 무는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 자진 신고를 기피한다. 이를 금품 제공자에게 부과하면 매표의 유혹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법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가령 비조합원이나 브로커에게 선거운동 관련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 금품 제공 의사 표시 등은 처벌 규정이 딱히 없다.
법 개정의 ‘골든타임’은 내년 4월 총선 직후다. 새 국회가 개원하는 시점이라 의원들이 지역 유권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합장 눈치를 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법에 기반한 인위적 개혁을 통해서라도 돈 선거를 근절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국회를 움직이는 데 힘을 보탤 농민단체들을 규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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