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쿵’ 알려지자 신종 수법… 일당 앞·뒤 차에
‘고액 알바’ 공모자 모집, 텔레그램으로만 접선
승객 의심 않는 점 노려... “방법 바꿔 안 걸린다”
지난해 12월 8일 오후 2시 10분쯤 경기 의왕시의 한 도로. 주행 중인 택시를 뒤따르던 한 차량이 들이받았다. 뒤 범퍼에 충격을 받은 택시는 사고 직전 뒤차 앞에 급히 끼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직전 차로를 변경한 것은 뒤따르던 차량이었다.
원래 3차로에 있던 뒤차량 앞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2차로에 끼어든 직후 앞서가던 택시를 들이받은 것이다. 사고 직전 택시는 건널목 정지신호에 멈춰 섰지만 과속하지 않았다. 급정지가 사고를 유발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웠다. 대낮이었고, 눈·비도 내리지 않았다. 운전자의 시야가 흐릿한 상황도 아니었다.
사고 후 정황도 석연찮았다. 택시에 탑승했던 3명(24세, 30세, 42세)의 승객은 곧바로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한방병원에서는 일반병원과 달리 한약 등을 처방한다. 이 때문에 보험사에서 내주는 치료비와 합의금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사고를 낸 뒤차량 운전자는 의외로 덤덤했다. 알고 보니 그가 운전한 차량은 공유차였다. 렌터카의 경우 차량을 빌린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면 면책금이 1인당 50만 원 정도지만 공유차는 5만 원가량에 그친다.
피해자 1인당 250만~300만 원 합의금… 택시 승객 의심 어려운 점 노려
결국 공유차 회사에서 가입한 보험사는 피해자 1인당 250만~300만 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했다. 영문도 모르고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를 포함한 피해자 합의금 총액이 1,000만 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택시와 공유차의 범퍼 수리비 수십만 원은 별도로 들었다.
이후 보험사는 수상한 사고 정황을 조사해 신종 사기 수법인 ‘택시뒤쿵’으로 결론 내렸다. 렌터카를 빌린 일당이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재빠르게 들이받아 합의금을 타내는 ‘뒤쿵’ 사기가 진화한 셈이다. 수사와 재판, 언론 보도로 기존 범행 수법이 널리 알려지자 꼼수를 쓴 것이다. 특히 이런 신종 수법은 택시에 탄 승객을 사기 일당으로 의심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 사고를 낸 공유차 운전자는 택시 승객들과 공모 관계였다. 택시에 탄 일당이 공유차를 몰고 인근에 대기 중이던 공모자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택시 번호와 위치를 알려줘 따라붙게 만든 것이다. 공유차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남은 사고 당시 동영상을 확보한 보험사는 공유차가 도로를 서행하며 목표물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택시가 나타나자 속도를 높여 따라붙은 정황도 확인했다.
'뒤쿵' 사기 알려지자 신종 수법… 추적 따돌리려 각고의 노력
이 같은 보험 사기 주모자가 공모자를 모집하고, 범행을 모의하는 수법도 더 은밀해졌다. 기존 ‘뒤쿵’ 사기 주모자는 특정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카페에 ‘뒤쿵’을 의미하는 ‘ㄷㅋ’이 들어간 게시 글로 고의 사고를 낼 공모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이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가능한 다수의 사이트에 ‘고액 알바’를 모집한다며 ‘운전 가능한 분’을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 '뒤쿵'을 의미하는 'ㄷㅋ' 등의 표기도 더 이상 대놓고 하지 않는다. 대신 최근 이들의 게시 글에는 'ㅌㄹ'이란 표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익명성이 보장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텔레그램을 통해서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모자에게 사건에 가담할 것을 남몰래 제안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져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쿵’ 사기 수법이 널리 알려지자,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 ‘고액 알바 운전 가능한 분’을 검색하자 한 인터넷 지역생활정보 사이트 내 ‘구인·구직’란의 "고액 알바 빠르고 쉽게 가능합니다"란 게시 글이 눈에 띄었다. 게시자는 "차량소지자 혹은 운전 가능한 분 연락주세요. 책임지고 돈 벌게 해드립니다"라며 ‘ㅌㄹ’이란 표기와 함께 영문을 아이디(ID)로 제시했다. ‘택시뒤쿵’ 주모자가 신원을 숨긴 채 공모자를 텔레그램을 통해 현혹하려는 글로 추정된다.
공모자, 주모자와 똑같은 위험 감수하고 적은 대가... 경찰 수사 중
범행·모의 수법을 바꾼 이들은 수사기관에 발각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본보가 확보한 ‘택시뒤쿵’ 사기 주모자와 공모자의 지난해 9월 SNS 대화에서 주모자는 "운전자는 걸리지 않을까요"라고 걱정하는 공모자를 "저희가 방법들이(을) 수시로 바꾸는 중이라 걸리지는 않습니다"라고 안심시켰다.
이 같은 꼬임에 넘어간 공모자는 공유차를 빌려 고의로 접촉사고를 낸 뒤 들이받힌 택시에 타고 있던 일당이 보험사에서 타낸 합의금의 일부를 받는다. 이 사건에서도 공유차 운전자는 120만 원 정도를 일당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모자와 함께 발각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받은 셈이다.
보험사가 파악한 이 사건 일당은 총 6명으로 대부분 휴대폰 판매·유흥업계 종사자로 추정된다. 이들은 다른 '택시뒤쿵' 사고에서도 일부 동일한 번호의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덜미를 잡혔는데, 본인 명의가 아닌 이른바 ‘대포폰’이었다. 이들은 차량 통행이 많았던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 주로 경기 지역에서 '택시뒤쿵' 수법 등으로 10여 건의 '뒤쿵' 사고를 내고 6,000만~7,000만 원 정도의 합의금을 타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최근 보험업계로부터 이 같은 ‘택시뒤쿵’ 사기 등 '뒤쿵' 사건을 수사 의뢰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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