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5년 아베 등 특정 프로그램에 불만
방송법상 '정치적 공정성' 해석 변경 정황
경제안보장관, "날조" 우겼다가 사임 압력
아베 신조 전 총리 집권 시절 일본 정부가 당시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문제 삼으며 언론 보도에 개입하려 했던 정황이 담긴 총무성 내부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당시 총무성 장관이었던 다카이치 사나에 현 경제안보담당장관은 “날조” “조작 문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총무성이 작성한 행정문서가 맞는 것으로 밝혀져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8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전날 총무성은 입헌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공개한 문서에 대해 “총무성의 행정문서가 맞다”며 78쪽에 이르는 전문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2차 아베 내각 시절이던 2014~2015년 일본 정부가 방송법상 ‘정치적 공평(공정성)’에 대한 해석을 변경한 경위가 기재돼 있다. 애초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해석은 “방송사업자의 프로그램 전체를 보고 판단한다”였지만, “하나하나의 프로그램을 보고 전체를 판단한다”는 해석이 추가됐다.
아베 "현재 방송 프로그램 이상... 바로잡아야"
이렇게 해석을 바꾼 계기는 아베 당시 총리와 이소자키 요스케 당시 총리 보좌관이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가진 불만이었다. 문서에는 이소자키 보좌관이 해석 변경에 부정적 의견이었던 총무성 출신 총리 비서관에게 “TBS ‘선데이 모닝’ 패널은 모두 비슷한 의견이어서 분명히 이상하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프로그램엔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었다. 같은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현재 방송 프로그램에는 이상한 것도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적으로 다룬 NHK 특정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분명히 잘못됐다”고도 발언했다.
야당은 이 문건이 아베 정권의 ‘방송 개입’ 시도 증거라고 비판한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아베 전 총리가 이미 사망했고,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태도다. 그러자 화살은 문건 공개 직후 “날조·조작 문서”라고 주장했던 다카이치 장관에게 돌아갔다. 문서에는 당시 다카이치 총무성 장관이 담당 국장 등에게 “TV아사히에 공정한 프로그램이 있느냐” “민방과 전면전이 될 것 같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다카이치 "날조 아니면 사임" 했다가 궁지 몰려
앞서 “문건이 날조가 아니면 사임할 것이냐”는 야당 의원 질의에 다카이치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총무성이 “정식 행정문서가 맞다”고 확인해 준 뒤에도 다카이치 장관은 자신에 대한 내용만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총무성 관료가 굳이 당시 장관 발언을 조작해 메모로 남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과 관료들의 얘기다.
다카이치 장관이 일본의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건 2021년 9월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 때다. 아베 전 총리의 강한 지지를 받으며 후보로 나선 그는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겠다”고 공언해 강경 우파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지난해엔 내각 각료인데도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8월 15일)에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가 지난해 7월 총격으로 사망한 후 정치권에서 영향력은 상당히 약해졌다. 이번 사건은 그에게 치명타가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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