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서 산모 위험에도 낙태 거부하자
"명확한 규정을" 피해 여성들 소송 나서
플로리다 등 '6주 후 낙태 금지법' 제출도
미국 내 플로리다주(州)를 비롯한 공화당 우세 지역에선 현재 '임신중절(낙태) 절대 불가'의 깃발이 잇따라 꽂히고 있다. 산모 생명이나 태아가 위험한 경우, 이를 허용하는 규정조차 유명무실화되는 분위기다. 반면, 의학적 응급 상황에서조차 임신 중단을 거부당한 텍사스주 여성 5명은 주정부에 소송을 걸고 나섰다. 1973년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은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 판결의 여진이 지금도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자신 또는 아이의 생명, 아니면 둘 모두를 잃는 걸 기다려야만 하는 절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이 기괴하고 '피할 수 있는' 지옥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등은 임신 17주에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임신중단을 하지 못했던 텍사스주의 여성 아만다 주라브스키(35)의 이 같은 말을 전했다. 주라브스키가 낙태 시술을 받지 못했던 건 아이 심장이 뛰고 "산모 생명이 위험할 만큼 아프지 않아서"라는 이유였다. 패혈증 증상이 나타나 비로소 수술을 받았으나, 때늦은 조치였던 탓에 나팔관 한쪽이 영구적으로 막혀 버렸다.
로렌 홀(28)은 아이의 머리뼈가 없는 상황에서 텍사스를 떠나 시애틀에서 '자궁경관 확장 소파술'을 받아야만 했다. 임신중절과 같은 수술이다. 홀은 다시 임신했지만, 하루하루가 두려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결국 두 사람을 포함, 5명의 여성은 텍사스주 정부를 상대로 "법의 임신중단 허용 사유를 보다 명확히 해 달라"고 요구하며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임신중단권 보장단체인 '생식권센터'의 낸시 노섭 대표는 "이번 소송은 낙태가 거부된 여성들이 낸 첫 소송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텍사스 등 낙태 금지령이 있는 대부분의 주는 의학적 응급 상황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나, 의료진이 몸을 사리는 게 문제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법을 시행 중인 텍사스의 경우, 불법 임신중단 시술을 행한 의료진은 면허 취소와 최대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의 벌금, 심지어 99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임신중단마저 하지 못한 여성들이 법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임신 중단권' 놓고 갈라진 미국
낙태 금지법의 부작용이나 역효과가 갈수록 커지면서 미국의 '임신중단 전쟁'도 격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플로리다주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임신 6주 이후' 임신 중단을 일절 불허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미 임신 15주 이후 낙태 금지법이 있는데도, 한층 더 임신중단에 강경한 조치를 취하려는 계획이다. 플로리다는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데다, 론 디샌티스 주지사도 찬성하고 있어 해당 법안의 의회 통과는 시간문제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 법이 시행되면 플로리다는 조지아 아이오와 켄터키 등에 이어 '6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일곱 번째 주가 된다"고 전했다. 네브래스카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도 비슷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25개 이상의 주에서 주법률로 임신 중지권을 보장하고 나선 민주당은 '먹는 낙태약'으로 보호 전선을 더 넓혔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 이후, 미 식품의약국(FDA)은 올해부터 일반 소매 약국에서 먹는 낙태약 ‘미프진’ 판매를 허용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공화당이 장악한 20개 주에서 미프진 판매를 중단하기로 한 미국의 대형 드러그스토어 체인 '월그린'을 상대로 "모든 사업 관계를 끊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는 극단주의자에게 위축돼 여성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회사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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