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500건 단속 학여울역사거리 가보니]
우회전 즉시 버스전용차로, 차선 변경 불가
구조적 결함... 여건 맞춰 단속 기준 바꿔야
“세상에 이렇게도 걸리네요.”
최근 한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 버스전용차로 위반 단속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자 “동감한다” “나도 당했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운전자들의 공분을 산 장소는 서울 강남구 한보은마아파트 앞 학여울역 사거리. 이곳의 버스전용차로 위반 건수는 지난해 1만2,575건으로 서울시 전체 평균(4,175건)의 3배나 된다. 하루 평균 34건씩, 차가 거의 없는 심야나 새벽시간대를 빼면 시간당 2대꼴로 과태료(승용차 5만 원, 승합차 6만 원)를 문 셈이다. 7일 문제의 장소를 직접 가보니 운전자들의 항변에 수긍이 갔다. 도로에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버스전용차로에 갇혀 옴짝달싹
학여울역 사거리에서 남부순환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곧바로 버스전용차로에 진입한다. 이런 경우 버스전용차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차로에서부터 76m까지 차선 변경 구간을 두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엔 차선 변경 구간이 무용지물이다. 대치역 방면에서 오는 직진 차량이 너무 많아 도로가 사실상 주차장이나 다름없어서다. 우물쭈물하다 차선 변경 구간을 지나면 곧바로 단속 카메라가 나타난다. 실제 이날 한 시간 정도 지켜본 결과, 차량 6대가 차선 변경에 실패해 단속 카메라를 지나쳤다. 인근 주민 김정기(51)씨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운전자는 어떻게든 억지로 끼어들지만 초행길엔 십중팔구 단속에 걸린다”고 혀를 찼다.
비슷한 결함을 가진 구간은 서울에 또 있다. 지난해 단속 건수가 1만 건을 훌쩍 넘는 송파구 잠실역 사거리(2만6,574건)와 노원구 화랑대역 교차로(1만2,520건)도 마찬가지다. 이들 3곳은 서울에 설치된 버스전용차로 무인단속 카메라 48대 가운데 작년 적발 건수 1~3위를 차지했는데, 운전자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획일적 지침에 근거해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다 보니 도로 여건과 운행 편의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무인카메라 설치 때 도로환경 반영해야
무인 카메라 단속 대상은 과속, 신호 위반, 주차 위반, 버스전용차로 위반 등 다양하다. 그러나 설치 여부를 결정한 땐 기준이 똑같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교통사고 위험지수(ARI) △과속방지 시설물 설치 △운전자 시야 확보 △도로 여건에 따른 위험도 등이다. 특히 사망ㆍ중상자 수나 사고 건수를 조합해 산출하는 ARI가 중요하다. ARI가 높을수록 단속 카메라가 많다는 의미다. 과속이나 신호위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다. 버스전용차로는 다르다. 교통량이나 통행 속도, 도로 유형 등 제반 환경을 고려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이미 설치된 단속 카메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사후 평가도 부족하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전문가가 사전 설치 과정에 참여해 적절성 여부를 평가하고, 설치 후에도 특정 지점에서 과태료를 많이 부과하면 문제점이 뭔지 주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도 개선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다. 잠실역 사거리와 화랑대역 교차로가 한 유명 연예인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되며 “사실상 단속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지난해 11월부터 단속을 중단했다. 시는 학여울역 사거리도 개선 공사가 필요한지 살펴볼 계획이다. 또 올해 계획된 버스전용차로 교통 운영개선 용역 때 무인단속 카메라 설치의 적합성을 따져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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