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팬덤 영향력 급증,
정치인이 눈치보며 따라가는 양상"
"즐기다 뒤늦게 말린다" 쓴소리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체포동의안 표결에서의 '무더기 이탈표'에 반발한 강성 지지층에게 내부 공격 '자제령'을 내렸음에도 내홍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개딸' 등 일부 강성 당원들이 주도하는 '수박(비이재명계 인사를 뜻하는 은어) 색출' 작업이 이어지면서다. 이를 두고 정치인과 팬덤 간의 역학관계가 뒤집힌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7일 민주당 청원 게시판에는 "이재명 대표의 사퇴를 청원한 세력들의 영구제명 및 출당을 청원한다"는 요구가 4,8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지난 4일에 올라온 해당 청원은 하루 전인 3일 "이 대표의 사퇴 및 출당, 제명을 청원한다"(3,700여 명 동의)는 요구에 대한 맞불 성격이었다. 한때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당이나 이낙연 전 대표의 제명을 촉구하는 사람 수도 이날 기준 7만 명을 훌쩍 넘겼다.
이 대표가 지난 4일 "내부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체포동의안 이탈표로 불거진 당내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다른 견해를 가진 정치인뿐 아니라 그의 지지층까지 배제해 달라는 요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타나고 있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자제령'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이 대표의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서는 이 전 대표의 정계복귀 가능성을 비판하는 견해가 분출했다. 이 대표는 올해 1월 11일 인천에서 열린 '찾아가는 국민보고회'에서 "작은 차이 때문에 다툼을 넘어 서로 공격하고 죽이려 하고 '수박'들이라서 (그렇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강성 지지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는 모습은 팬덤의 영향력이 정치인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통합위원회 소속 '팬덤과 민주주의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현출 건국대 교수는 본보 통화에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대중의 정치 참여가 용이해지고 파급력도 커지자, 팬덤이 주체가 되고 정치인이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서 "군중은 자기 동력을 갖고 있어서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며 "그들을 세뇌시켜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초기엔 정치인들이 강성 팬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지만, 나중에는 권력관계가 역전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자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성 지지층의 행태는 이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대표가 개딸들의 과도한 행태를 사실상 방치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재명이네 마을'에는 '수박 색출'을 멈춰 달라는 이 대표의 메시지가 없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당사 앞에서 '수박 깨기' 집회가 있을 때 바로 말렸어야 했는데 타이밍이 늦었다"며 "('개딸' 등이) 그렇게 하는 걸 즐기다가 마지못해 말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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