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선제적 해법 공개...공은 日정부로"
日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끝나" 입장 고수
"日이 화답해야 해법 의미, 신뢰 쌓아 가야"
"우리 정부의 대승적 결단에 대해 일본 측도 정부의 포괄적 사죄,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호응해 오길 기대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발표한 뒤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일본의 자발적 호응"을 강조했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 전범기업 대신 우리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일본의 선의와 화답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자칫 이율배반으로 비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강제동원 해법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강제동원 해법에서 일본과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쟁점 위주로 정리했다.
대법원 "전범기업이 배상하라"→日 완강하자 '제3자 변제'로 우회
최대 쟁점은 누가 '판결금(배상금)'을 낼 것인가였다. 대법원에서 패소한 전범기업의 몫이지만 "1엔도 낼 수 없다"고 버티면서 우리 정부는 국내기업이 재원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제3자 변제'라고 설명했다. 대신 내준다는 의미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포스코 등 16개가량 기업이 지목됐다.
청구권협정이 한일수교와 맞물린 만큼 외교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의미가 퇴색된다.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최종 승소한 피해자 15명(생존자 3명 포함)에게 밀린 임금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동냥 같은 돈 안 받겠다(양금덕 할머니)"고 일부 피해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청구권협정을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인식차를 당장 좁히기 어렵다고 보고 일단 우리 재원만으로 재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전범기업이 돈을 내지 못하겠다면 일본의 사죄나 성의 있는 사과라도 받았어야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찌감치 정부 협상의 기대치에서 제외됐다. 외교부 주관 강제동원민관협의회에 참여해 온 전문가들은 앞서 1월 초 공개토론회에서 "최선 아닌 차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완강한 입장'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의 배상과 사과, 피해자들이 주장한 두 가지 요구를 협상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셈이다.
양국 재계가 기금 조성…강제동원과 무관해 '한계'
이에 정부는 우회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범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재계로 범위를 넓혀 우리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기금(재단)을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 기금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전달된다면 간접적이나마 배상의 취지를 살리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 기업이 정치적 사과의 표현을 담아 행동하는 문제를 양국 경제 단체끼리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아닌 재계, 전범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들이 도의적인 차원에서 사과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업이 (향후 판결금 기금에) 기부하는 것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 재계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방안인 셈이다.
양국 재계가 청년세대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가자는 것이다. 다만 이는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이 없어 "협상 실패를 가리려는 술책"이라며 피해자 측이 비판하는 부분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먼저 해법을 발표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일본이 얼마나 나설지가 관건인데, 합의를 이행할 아무런 강제장치가 없어 한계가 적지 않다. 손 교수는 "일본 측이 호응하지 않으면 우리의 해법은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적대국 간 군축협의를 하듯 한일 양국도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신뢰를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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