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문 출판사 미스즈서방의 편집자
가토 게이지의 회고록 '편집자의 시대'
"출판계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출판계는 신기한 일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가토 게이지(1940~2021)의 회고록 '편집자의 시대'는 20세기 후반 번역 문화의 중심에 섰던 저자의 기록이자 일본 인문학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35년간 편집자로 일했고, 일본의 대표적 인문·학술 출판사인 미스즈서방의 2대 편집장도 맡았다. 그가 편집한 책의 목록과 저자, 번역가들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의 지성사를 쓸 수 있을 정도이니, 이 책은 개인적 경험을 넘은 역사적 기록으로 불려야 한다.
미스즈서방은 20세기 후반 번역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한나 아렌트, 롤랑 바르트 등 주요 서구 지식인들의 저작을 번역 출간했고 마루야마 마사오 등 당대 일본 사상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해 온 출판사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 현대사의 기초가 되는 문서를 수집한 '현대사 자료'(전 45권, 별권 '색인' 1권)와 '속·현대사 자료'(전 12권)는 인상적인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 당시 편집자들은 극비 자료, 해외 반출 자료까지 수집해 정리했다.
편집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저자도 제너럴리스트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코피가 날 때까지 '연감'을 읽었던" 어린 시절부터 폭넓은 소양과 전문성을 차곡하게 쌓아왔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씁쓸함도 감추지 않는다. 책의 가치가 잊히고 있는 지금과 찬란한 과거가 극명히 대비되서다. 미스즈서방의 옛 사옥 부지에 들어선 24시간 코인 주차장은 한 단면이다. "책 만드는 일에 홀렸던 사람들의 꿈의 흔적을 보여주는 현대의 풍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출판계엔 꿈의 흔적만 남은 걸까. 신기한 일을 일으킬 출판계의 힘을 한번 더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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