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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 떠나도 또 다른 지옥… 브로커 성범죄·폭행 내몰린 로힝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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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 떠나도 또 다른 지옥… 브로커 성범죄·폭행 내몰린 로힝야족

입력
2023.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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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난민들에게 돈 받고 밀항 주선
음식 요구하면 때리고 숨지면 바다로
말레이행 원하지만 인니 등으로 바꿔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주 란파나 해변에 도착한 로힝야족 모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체=AFP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주 란파나 해변에 도착한 로힝야족 모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체=AFP 연합뉴스

“1만 링깃(약 295만 원)을 주면 말레이시아에 가서 돈 벌게 해 줄게.”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주 난민캠프에 살던 로힝야족 소년 구라 아민(20)은 2020년 밀입국 브로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나무 배 위에 올랐다. 900명의 다른 난민들도 함께였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망망대해를 떠돌기를 7개월, 마침내 육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꿈꿨던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 최북단 수마트라섬 아체주였다. 그마저도 살아서 땅을 밟은 이는 800명으로 줄었다.

아민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음식은커녕 물도 없었고, 이를 요구하는 사람은 (브로커에게) 플라스틱 파이프로 맞았다”며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300만원 가량 내고 밀항선 탑승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머물던 미얀마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또다시 무자비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열악한 난민촌 주거 환경과 생활고를 뒤로하고 밀항을 택했지만,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삶은 반복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번 ‘가해자’는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운 이들이었다.

여성 난민들은 남성 브로커의 성 노리개가 됐다. SCMP는 아민의 증언을 토대로 “많은 여성들이 배에서 브로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인도네시아 도착 이후 의사들이 이들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 상당수는 임신 중이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주 람파나 해변에 로힝야 난민을 태운 배가 들어오고 있다. 아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주 람파나 해변에 로힝야 난민을 태운 배가 들어오고 있다. 아체=로이터 연합뉴스

턱없이 부족한 식량도 생존을 위협한다. 먹을 것은 물론, 마실 물도 부족해 빗물이나 소변을 마시기 일쑤다. 반발을 제기하는 사람은 브로커들의 무차별 폭행에 시달린다. 병들거나 맞아서 숨진 자의 시신은 바다에 던져졌다고 난민들은 주장한다. 식량이 떨어지면 브로커가 난민 일부를 다른 배에 버리고 떠나는 사례도 속출한다.

사실 로힝야 난민들에게 브로커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2017년 로힝야족의 고향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는 미얀마군이 잔혹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를 피해 가까스로 콕스바자르 등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로 향했지만, 이곳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마약 밀거래 조직이 여성·아동 납치와 인신매매를 벌이고 자생적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는 난민촌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암살 등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비영리단체 ‘세계평화를위한기구’는 2020년 한 해에만 인신매매에서 구출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이 529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날이 저물면 텐트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 내는 약육강식의 지옥같은 공간을 피하기 위해 그나마 여력이 있는 난민들은 밀항을 감행했다. 빚을 내 가며 브로커에게 일인당 약 5,000~1만 링깃(약 147~295만 원)을 줘야 했다. 그러나 오랜 굶주림과 인신매매 등 생지옥을 피해 목숨 걸고 탈출한 곳은 해방구가 아니었다. 또 다른 지옥이었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체=AP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체=AP 연합뉴스


입국 어려운 말레이 대신 인니로

당초 약속과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난민들은 국교가 이슬람교이면서 난민들의 취업이 어렵지 않은 말레이시아를 선호한다. 인도네시아도 무슬림 인구가 많지만, 노동력이 풍부해 난민의 취업을 금지하는 탓에 우선 순위는 아니다. 불교 국가인 태국 역시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땅을 밟긴 쉽지 않다. 말레이시아가 “이미 20만 명 이상 로힝야 난민이 유입됐다”며 추가 수용을 거부한 데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를 이유로 해안 경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은 수개월씩 바다를 떠돌다가 난민들을 특별한 설명도 없이 인근 인도네시아 아체주나 불교 국가 태국에 내려놓는다. 사실상의 ‘방치’다. 8년 가까이 로힝야 위기를 취재해 온 영국 가디언 기자 카밀 아흐메드는 “로힝야족이 가는 곳마다 어딜 가든 범죄가 있고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된다”고 우려했다.

브로커의 반인도적 행위는 비판 대상이지만, 돈을 받고 밀입국을 주선하는 점을 두고는 긍정의 시선도 있다. 로힝야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인권단체 ‘아라칸프로젝트’ 크리스 레와 이사는 “일각에선 브로커들을 ‘서비스 제공자’로 본다”며 “로힝야족이 더 끔찍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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