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는 파격이었다.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을 향해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역사적 책임과 성찰을 전제로 달며 '투트랙'으로 접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 얽혀 있는 여러 현안도 아예 거론하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과 막판 협의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최대한 외교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르면 3월에 성사될 수도 있는 윤 대통령의 방일 이벤트를 앞두고 사전정지작업으로 풀이하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동시에 북핵 위협을 비롯한 안보 위기를 지적하며 한미일 3각 협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단순히 경제·문화적으로 상생하는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해 군사적으로 일본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8월 광복절 경축사와 비교해 일본과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윤 대통령은 당시 이웃인 일본과의 관계를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고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데 그쳤다.
반면 3·1절 기념사에서는 북한에 맞서기 위한 협력의 대상으로 일본의 존재감을 강조하면서 대신 남북관계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사'라는 직접적 표현을 삼가고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는 완곡한 표현을 통해 가급적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처럼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이 빠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과거 대통령들의 취임 첫해 기념사를 살펴보니,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전쟁 시기 있었던 반인륜적인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이고 우리 고유의 영토”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 변화를 촉구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 없다”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하긴 했지만 “역사의 진실은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고 분명하게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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