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 낭독한 종로 탑골공원
수백명 노인에 기념탑 둘러싸여
전주 3·1운동 발상지는 시장통
전국 독립운동 현충시설 907개
"역사성 살리도록 관리 일원화해야"
3ㆍ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이른 아침부터 모습을 드러낸 노인들로 어느새 독립선언문이 새겨진 3·1운동기념탑 앞이 가득 찼다. 인근 사회복지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모여든 노인들은 공원 입구부터 기념탑을 거쳐 팔각정까지 길게 줄을 섰다. 반대편 공원 서문에서도 복지단체가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기 위해 노인 수백 명이 공원 담장을 둘러쌌다. 아이와 함께 공원을 찾은 김경미(38)씨는 “3ㆍ1절을 맞아 왔는데 노인들만 많아 깜짝 놀랐다”며 “역사적 의미나 자취를 찾기 어려워 아쉽다”고 말했다.
노인 성지 이미지 박힌 탑골공원
일제 침략에 항거한 3ㆍ1운동이 일어난 지 104년째다. 하지만 전국의 관련 사적지들은 방치되고 있다. 사적지 정비를 통해 구국 정신을 되살리고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97년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탑골공원이 대표적이다. 탑골공원은 1919년 3ㆍ1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이뤄진 3ㆍ1운동의 발상지다. 지금도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과 이를 기념한 3ㆍ1운동기념탑, 3ㆍ1운동기념부조,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 동상 등이 남아 있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과 보물3호인 대원각사비 등 중요 문화재도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탑골공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노인들의 성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근 복지단체 등에 따르면 공원을 찾는 노인은 하루 평균 400명을 넘는다. 이날 공원을 찾은 대학생 이예림(20)씨는 “노인전용공간처럼 느껴져 공원에 들어오기 꺼려질 때가 많다”며 “공원 내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이나 벤치 등 편의시설도 다른 곳에 비해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공원 성역화 사업에 나섰지만, 사업 이후에도 노인들이 다시 몰려들어 큰 변화는 없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무료급식소, 서울노인복지센터 등 인근에 노인시설이 많아 노인 이용자가 특히 많다”며 “노인들이 몰리면서 다양한 시민들의 이용이 제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점에 둘러싸인 ‘전주 3ㆍ1운동 발상지비’
3ㆍ1운동 사적지만 6곳이 있는 전북 전주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8일 찾은 완산구 남부시장 옆 ‘전주 3ㆍ1운동 발상지비’ 주변은 노점에 둘러싸여 있었다. 상인들이 쓰다 버린 나무판자와 종이박스가 가득 쌓여 시민들 접근을 막고 있었다. 기념비는 1919년 3월 13일 전주에서 3ㆍ1운동이 처음 열린 것을 기리기 위해 2000년 들어섰다. 인근 상인 정모(55)씨는 “여기서 10여 년간 장사했지만 3ㆍ1운동 발상지인 줄은 몰랐다”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만큼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포토존을 설치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완산구 완산공원에 있는 애국지사 김영호 구국운동 추념비도 산 중턱에 위치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역사성 살려 시민 공간으로”
전문가들은 사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적지 관리와 보존 실태가 역사를 대하는 사회의 자화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현충시설 대부분이 사적지라는 인식보다 노인과 어린이, 반려동물 등이 이용하는 공원에 가깝다”며 “역사 공연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장소의 역사성을 만들면서 다양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회 관계자도 “보훈처와 해당 지자체로 이원화돼 있는 사적지 관리 주체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적 사실을 시민들이 쉽게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지정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은 전국적으로 총 907개에 달한다. 종로구청도 지난해 12월 ‘탑골공원 개선사업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하는 등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공원 담장을 허물고 노인 대체공간을 마련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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