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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탁상행정 논란에도 "목욕탕서 불나면 가운 입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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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탁상행정 논란에도 "목욕탕서 불나면 가운 입으세요"

입력
2023.02.28 15: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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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전국에 봄철 화재예방대책 공문
수건으로 물 닦고 옷 입으려다 대피 지체
"가운이 골든타임 내 신속 대피에 큰 효과"

삽화=박구원 기자

삽화=박구원 기자

‘수건 한 장이 있다면, 얼굴을 가릴 것인가, 주요 부위를 가릴 것인가.’

대중목욕탕에서 불이 나는 상황을 가정해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사안에 소방청이 수건 대신 ‘목욕 가운’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신속한 대피가 중요한 상황에서, 알몸 이용자들이 재난 현장을 빠르게 벗어나는 데 가운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소방청은 대중목욕탕 이용자를 위한 임시 가운 비치 권고를 포함한 ‘2023년 봄철 화재예방대책’을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하달했다고 28일 밝혔다.

공문에 따르면 다중이용시설과 건설현장, 행사장 등 5개 분야 13개 과제를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추진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는 제때 대피하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사우나 이용자를 ‘화재 피난 취약자’로 분류하고, 이들의 대피 방안 중 하나로 가운이 제시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청의 목욕탕 가운 비치 권고는 처음이 아니다. 소방안전 정책이 피난 우선으로 바뀐 2019년부터 시작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사우나 화재에서 29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숨지면서 신속 대피 필요성이 환기됐다”며 “소화기 사용법, CPR 교육보다 ‘불이 나면 우선 대피’에 방점을 찍고 반복적으로 가운 비치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강제성 없는 권고지만 올해 다시 논란이 된 것은 업황과 무관치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대중목욕탕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남 창원의 한 사우나 업주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가뜩이나 연료비가 올라 죽을 맛인데, 가운 구입비를 업주에게 부담시키려 든다”며 반발했다. ‘가운을 비치할 거라면 차라리 방독면이 낫다’, ‘전형적인 탁상행정’ 등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창원소방본부는 최근 사우나와 수면실 등 관내 39개 탈의시설에 가운 비치를 권고했다.

인천 강화소방서 관계자가 자체 제작한 화재 대피용 가운을 목욕탕에 전달하고 있다. 강화소방서는 대피용 가운을 개당 1만 원에 제작했다. 소방청 제공

인천 강화소방서 관계자가 자체 제작한 화재 대피용 가운을 목욕탕에 전달하고 있다. 강화소방서는 대피용 가운을 개당 1만 원에 제작했다. 소방청 제공

소방청은 목욕 가운이 대중목욕탕 화재 발생 시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젖은 알몸의 이용자들이 몸을 닦은 뒤 옷을 입으려다 대피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걸치고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목욕 가운이 화재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은 2018년 사우나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꾸려진 TF에서 처음 나왔다. 최근 인천 강화소방서 등 일부 지역에선 가운을 제작해 업소에 시범 공급했지만,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영국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도 소화기 사용법과 신고 요령을 가르치지만 그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신속한 대피 교육”이라며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가운 비치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정민승 기자
창원= 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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