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시 쿰 등 모두 여학교에서 발생
학교 폐쇄 노린 광신도 소행 가능성
엄격한 신정일치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여학생만을 타깃으로 노린 연쇄 독극물 테러 공격이 벌어졌다. 중북부 도시 쿰에서 시작돼 수도 테헤란 등 다른 지역에까지 번진 이 사건의 피해자는 200명이 넘는다. 배후는 불분명하지만, 인접국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여성 교육 금지' 정책에 영향을 받은 광신도의 소행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26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부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쿰 등에 소재한 여러 학교에서 (독성 물질) 중독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 특히 여학교의 폐쇄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테러엔 '화합물'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테러에 쓰인 화합물이 치명적이진 않았던 탓에, 피해 학생들 대부분은 치료가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연쇄 독극물 테러는 3개월 전쯤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30일 이슬람 시아파 성지 가운데 한 곳이자 신학교가 있는 종교도시 쿰의 한 중등학교에서 학생 18명이 두통과 메스꺼움, 호흡곤란 등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로부터 2주 후, 같은 학교에서 학생 50여 명이 또다시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이 같은 일은 수도 테헤란과 아르데빌, 보루제르드 등으로 번졌다. 쿰을 포함, 4개 도시의 14개 학교에서 발생한 독극물 테러의 피해자는 2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한 피해 학생은 "귤과 비슷한 냄새를 교실에서 맡고 메스꺼움 등이 몰려 왔다"고 증언했다.
예사롭지 않은 대목은 공격 대상이 모두 여학교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란 당국이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영국에 본부를 둔 반정부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국영 언론에선 이 사건이 여학교에서만 일어났다는 사실을 비롯, 관련 보도를 자제해 (여론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이란 교육부도 "증상을 호소한 학생들에겐 기저 질환이 있었다"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쿰 지역의 피해자 가족 수백 명은 14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주요 외신은 지난해 한 이란 여성의 의문사 이후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시점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위에 참가한 10대 여학생들도 히잡을 벗어던진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경을 맞댄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 정권의 여성 인권 탄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 인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지 매체 '쿰 뉴스'도 알자흐라 대학의 이슬람 연구자인 나피세흐 모라디를 인용해 "탈레반과 유사한 신념을 가진 집단이 배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모라디는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령이 이란 여학교 공격을 부추겼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여학생과 가족에게 두려움을 심어 궁극적으로는 (여성을) 집에 가두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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