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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 고갈의 날

입력
2023.02.27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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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오
정영오논설위원

2055년 고갈돼도 독일식으로 지속 가능
오히려 향후 17년간 기금 규모 너무 커 골치
세대 간 형평성 고민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한국일보의 국민연금 인식조사 결과, 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국민연금 제도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일보의 국민연금 인식조사 결과, 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국민연금 제도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특히 ‘어제 얼마나 걱정과 우울감을 느꼈는가’를 측정한 부정적 정서가 2019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가뜩이나 걱정과 우울감이 큰 한국인을 더 걱정하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 노후를 지켜줄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고갈되고, 이후에는 소득의 26.1%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할 것”이라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잠정치’가 그것이다. 이제 막 국민연금을 붓기 시작한 젊은 세대가 정작 본인이 받는 시점에는 ‘빈 깡통’만 물려받을 처지이고, 그 이후 세대인 지금 막 태어난 아이들은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이들을 부양하는 데 퍼부어야 한다는 경고다.

그런데 ‘한국의 32년 뒤 미래’가 이미 오래전부터 현재인 나라가 있고, 바로 독일이라면 조금 안심이 되지 않는가. 독일은 1969년부터 연금 기금을 쌓지 않고 매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기업과 그 직원이 절반씩 내는 보험료와 정부 예산으로 그해 연금을 충당한다. 독일 연금 보험료율은 18.6%(2021년)로 한국의 2배이지만, 25% 대인 영국 네덜란드나 28%에 육박하는 프랑스보다는 낮다.

2055년부터 한국도 지금 독일처럼 연금 급여 지출의 30%를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면 현재 독일 수준 보험료율로 국민연금을 계속 운영할 수 있다. 다만 인구구조 차이로 우리나라의 연금 급여 지출이 2080년까지 꾸준히 올라가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예상이 무의미할 정도로 먼 미래 일이다. 그사이 산업용 로봇이 국민연금을 대신 내주는 세상이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혹시 국민연금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발상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국민 입장에서 보면 세금과 연금 모두 국민을 위해서 쓰여야 하며,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을 적게 내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하고, 세금을 덜 내려면 연금을 더 내면 된다. 세금이든 연금이든 많이 내는 게 싫으니, 국민연금을 깨고 다 돌려주기를 바라는가. 그걸 가장 기뻐할 이들은 기업이다. 직장인 보험료의 절반은 기업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세계 최저인 나라에서 태어난 귀한 자녀들의 부담을 낮춰 주기 위해 현재 월 소득(상한 553만 원)의 9%인 보험료율을 올려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세대 간 형평성을 위해서이지,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다. 국민연금이 시작된 1988년 3%에서부터 계속 올려 왔다. 그래도 너무 급격하게 올리는 것은 오히려 미래 세대에 피해가 된다.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지난해 1,000조 원을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 원인 나라에 과도한 재원이 국민연금 기금에 고여 있다. GDP 대비 적립금 비율은 단연 세계 최고다. 게다가 2040년까지 계속 늘어나 1,755조 원이 된다. 17년 뒤 시작될 적자가 걱정돼 지금 과도하게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당장은 줄어든 월급만큼 부모가 자녀에게 쓸 교육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금 고갈 걱정보다, 향후 17년간 기금 흑자 기간과 그 이후 15년간 적자 기간 사이에 세대별로 엇갈리는 이해관계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에 저항감이 큰 2030세대를 위해 국민연금 기금에서 저리로 내 집 마련 자금을 융자해 주는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세대별 대표들이 모여 국민연금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은 지금 시작해도 조금도 늦지 않다. 국민연금 건전 운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기금 고갈’ 위험을 과장해 보험료율을 높이려다 불필요한 세대 갈등만 조장하는 공포 마케팅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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